[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지난달 24일 국가정보원이 지난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면서 시작된 NLL대화록 정국이 한달 째가 돼서는 '사초(史草)실종'으로 판이 커졌다. 사태가 진화되기는커녕 확산되는 추세다.
NLL포기발언의 진위를 가리자고 시작된 공방은 국가기록원에 대화록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공방의 목적을 분실했다. 대신 대화록 존재의 원인과 책임소지를 놓고 여야간의 기싸움만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공격하는 야당과 수비하는 여당의 역할도 바뀌었다. 새누리당이 연일 과거 집권여당인 민주당을 압박하고 민주당의 출구찾기에 제동을 걸면서 사초실종 정국에서만큼은 여야의 공수가 바뀌었다.
사초실종정국의 발화점은 민주당 문재인 의원이다. 지난 6월 24일 국정원이 회의록을 공개하고 새누리당이 NLL포기가 맞다고 주장하자 문재인 의원은 대화록공개를 주장했다. 대화록 전문을 읽어보고 NLL포기발언이 사실로 밝혀지면 정계를 떠나겠다는 초강수 전략을 썼다.
여야가 합의로 구성한 열람위원에 전문가들도 동원돼 국가기록원을 샅샅이 뒤졌지만 대화록을 찾지 못했다. 발언의 진위 공방이 대화록부재(不在)의 원인과 책임의 규명이라는 사초실종 공방으로 확전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이를 사초실종 게이트로, 민주당은 기록관게이트로 맞섰다. 그러다 민주당이 사초실종의 규명과 별개로 회의록을 제외한 정상회담 사전과 사후의 기록물로 원래 목적인 NLL포기발언의 진위를 가리자고 주장했다. 문재인 의원도 전날 개인성명을 통해 이같이 주장하고 NLL논란의 종지부를 찍자고 제안했다.
민주당과 문재인 의원으로서는 고심 끝에 내놓은 출구전략인 셈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생각은 달랐다. 새누리당은 문재인 의원의 성명이 ▲대화록 폐기를 알고 있었는지의 여부에 답하지 않았고 ▲사초폐기를 알았다면 고해성사를 해야하며 ▲몰랐다면 검찰수사를 촉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한발 더 나아가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말고 서해 NLL(북방한계선) 과 관련한 여러 회의 자료도 국가기록원에 없다"며 파기 가능성을 제기했다. 국가기록원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민주당이 단독 열람하려는 것에 대해 "단독열람은 대화록이 실종된 것에 대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면하기 위한 물타기 전술"이라며 반대했다. 새누리당은 검찰 수사를 통한 원인규명의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군 통수권자 대통령의 NLL포기발언은 국가안보와 국민의 안위에도 중대한 사안이지만 지금은 대화록실종을 둘러싼 정치공방의 껍데기만 남았다. 더구나 여야간 공방이 이전투구 양상으로 비춰지면서 정치력실종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민대통합위원회의 한광옥 위원장은 전날 한 라디오에 출연, "조사까지 한 만큼 국민의 의문점은 시원하게 밝혀줄 필요가 있다"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NLL은 우리 영토로서 국민의 생명선이라는 원칙을 여야간에 합의하고 이 문제를 더이상논쟁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최근 여러 인터뷰에서 "정치권의 행태를 보면 진실규명보다는 상대방을 궁지로 몰려고 하는 정쟁으로 보일 때가 많다"며 "이제 여야는 비교적 빠지고 국가기록원은 왜 못 찾는지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규명은 차분히 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정쟁을 계속하면 어느 쪽이 득이나 해 볼 것 없이 여야를 싸잡아서 정치권을 향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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