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ar_progress

글자크기 설정

닫기

[초동여담]무거움에 관하여

시계아이콘01분 58초 소요

많은 부처들은 돌이나 금속의 몸을 입고 있다. 처음에 깨달음을 얻었던 석가모니 부처는 나와 같은 살을 가진 존재였다는 걸 때로 잊을 만큼, 나는 돌부처와 금동부처들에 익숙하다. 깨달은 존재의 몸을 금석(金石)으로 만들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그는 시간이 흐르면 허물어지는 인간의 살이 아니라, 영원한 살을 꿈꾸었으리라. 100년의 안쪽에서 깜박거리는 존재가 아니라 1000년을 넘어서는 영원한 몸을 그 돌과 그 청동에 불어넣고 싶었으리라. 그런데, 돌과 청동이 지닌 뜻은 '영원의 꿈'만은 아니다. 세월을 견디는 그 강하고 단단한 속성은, 자연스럽게 부처의 체중을 높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돌부처와 금동부처는 무척이나 무거운 존재라는 얘기다. 깨달음과 무거움, 관련 없는 이항(二項)일까.


부처의 무거움. 부처를 경배하러 온 사람들은 돌이나 청동을 경배하러 온 건 아니다. 깨달음으로 나아간 사람의 어떤 상징과 의미와 기운을 만나러 온 것이다. 불상 앞에 있노라면 대개 고요를 느낀다. 돌이나 청동이 스스로 소란을 만들어 내는 법이 없으니 고요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겠지만, 그보다도 미묘한 표정에서 우러나는 고요, 안정감 있는 자세와 편안한 몸짓이 주는 고요, 그리고 돌과 청동의 묵중함이 자아내는 고요가 공간 전부를 고요하게 한다. 시앗싸움에 돌부처가 돌아앉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만큼 처첩의 갈등은 보기 흉하다는 걸 강조하는 말이다. 결코 돌아앉을 수 없는 대상 1호로 돌부처를 꼽았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돌부처는 돌이기도 하지만, 결코 돌아앉지 않을 거라는 신뢰를 지닌 무게감으로 앉은 부처이기 때문이다.

돌의 무거움은, 부처를 새긴 질료의 무거움이기도 하지만, 깨달음의 무거움,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깨달음의 안정감이기도 하다. 깨달음은 이제 막 돋아나는 미소와 어딘지 모르게 슬픈 표정들로 꽉 차 있다. 미소는 자비의 자(慈)이다. 내가 아끼는 타인이 잘되었음을 기뻐하는 마음이다. 슬픔은 자비의 비(悲)인데, 내가 아끼는 타인이 괴로워할 때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 마음들은 모두 자신을 향해 있는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한 것이다. 돌부처는 타인을 바라보는 가장 아름다운 마음을 영원히 새겨 놓은 것이다. 그 마음은 가볍게 변하지 않으며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우린 돌부처가 자기를 말하는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오직 모든 이의 말을 듣고 빙긋이 웃어 줄 뿐이다.


인도에서 스승을 의미하는 말인, 구루(guru)는 '무겁다'는 의미를 지닌 산스크리트어다. 스승은 왜 무거운가. 그는 오랜 수련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중심돌을 쌓아 왔기 때문이다. 탐욕과 분노는 그 무게중심에 생긴 문제이다. 세상의 변화, 혹은 환경과 인심의 변화에 따라 본질이 흔들리는 것은, 중심이 저 무거움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깨달음은 하나다. 삶은 짧고 괴롭다. 그것을 가장 길고 행복하게 쓰는 방법은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이에게 베푸는 일이다. 너 자신에게 쓰면 너는 가벼워진다. 너의 몸과 마음이 너를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너를 쓰면 너는 무거워진다. 많은 사람들이 변함없는 너를 쓸 수 있으려면 너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꿀벌은 꽃 속의 꿀을 한 번에 한 방울씩 꺼내 온다. 그런 다음 봉방(蜂房)에 그 화밀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벌집 위에 떠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이런 건조작업으로 화밀은 90% 이상의 수분이 증발하고 밀정(蜜精)이 남게 된다. 이 일이 끝나면 벌은 다시 화밀 한 방울을 꽃에서 봉방으로 운반한다. 다시 날개로 부채질을 한다. 묵직한 벌통은, 꿀벌들이 수백만 번을 날아서 따온 꿀들의 무게이다.


돌부처와 구루의 무게에는 저 무수한 날갯짓이 숨어 있다. 내부에 중심돌을 쌓는 일은, 그저 단순한 무위(無爲)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하나 고뇌와 성찰과 단련의 결과이다. 자기애(愛)에서 빚어지는 온갖 인간적인 가벼움들 모두가 마음을 흔들고 훔치고 빼앗는 강도이며 도둑들이다. 돌처럼 꾹 눌러앉아 꿈쩍 않는 무게. 가벼움으로 다들 몰려가는 세상에서, 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저 묵직한 구루가 그립다.
 
<향상(香象)>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AD
AD

당신이 궁금할 이슈 콘텐츠

AD

맞춤콘텐츠

AD

실시간 핫이슈

AD

놓칠 수 없는 이슈 픽

  • 25.12.0209:29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자식 먹이고자 시도한 부업이 사기…보호망은 전혀 없었다

    "병원 다니는 아빠 때문에 아이들이 맛있는 걸 못 먹어서…." 지난달 14일 한 사기 피해자 커뮤니티에 올라 온 글이다. 글 게시자는 4000만원 넘는 돈을 부업 사기로 잃었다고 하소연했다. 숨어 있던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나타나 함께 울분을 토했다. "집을 부동산에 내놨어요." "삶의 여유를 위해 시도한 건데." 지난달부터 만난 부업 사기 피해자들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아이 학원비에 보태고자, 부족한 월급을 메우고자

  • 25.12.0206:30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부끄러워서 가족들한테 말도 못 해"…전문가들이 말하는 부업사기 대처법 ⑤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를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 보려고 한다. 전문가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하는 부업 사기를 두고 플랫폼들이 사회적 책임을 갖고 게시물에 사기 위험을 경고하는 문구를 추가

  • 25.12.0112:44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부업도 보이스피싱 아냐? "대가성 있으면 포함 안돼"

    법 허점 악용한 범죄 점점 늘어"팀 미션 사기 등 부업 사기는 투자·일반 사기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구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업 사기도 명확히 전기통신금융사기(보이스피싱)의 한 유형이고 피해자는 구제 대상에 포함되도록 제도가 개선돼야 합니다."(올해 11월6일 오OO씨의 국민동의 청원 내용) 보이스피싱 방지 및 피해 복구를 위해 마련된 법이 정작 부업 사기 등 온라인 사기에는 속수무책인 상황이 반복되

  • 25.12.0112:44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의지할 곳 없는 부업 피해자들…결국 회복 포기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나날이 진화하는 범죄, 미진한 경찰 수사에 피해자들 선택권 사라져 조모씨(33·여)는 지난 5월6일 여행사 부업 사기로 2100만원을 잃었다. 사기를 신

  • 25.12.0111:55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SNS 속 '100% 수익 보장'은 '100% 잃는 도박'

    편집자주부업인구 65만명 시대, 생계에 보태려고 부업을 시작한 사람들이 부업으로 둔갑한 사기에 빠져 희망을 잃고 있다. 부업 사기는 국가와 플랫폼의 감시망을 교묘히 피해 많은 피해자들을 양산 중이다. 아시아경제는 부업 사기의 확산과 피해자의 고통을 따라가보려고 한다. 기자가 직접 문의해보니"안녕하세요, 부업에 관심 있나요?" 지난달 28일 본지 기자의 카카오톡으로 한 연락이 왔다.기자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인스

  • 25.12.0513:09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김용태 "이대로라면 지방선거 못 치러, 서울·부산도 어려워"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박수민 PD■ 출연 : 김용태 국민의힘 의원(12월 4일) "계엄 1년, 거대 두 정당 적대적 공생하고 있어""장동혁 변화 임계점은 1월 중순. 출마자들 가만있지 않을 것""당원 게시판 논란 조사, 장동혁 대표가 철회해야""100% 국민경선으로 지방선거 후보 뽑자" 소종섭 : 김 의원님, 바쁘신데 나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김용태 :

  • 25.12.0415:35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강전애x김준일 "장동혁, 이대로면 대표 수명 얼마 안 남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2월 3일) 소종섭 : 국민의힘에서 계엄 1년 맞이해서 메시지들이 나왔는데 국민이 보기에는 좀 헷갈릴 것 같아요. 장동혁 대표는 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고 계엄을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냈습니다. 반면 송원석 원내대표는 진심으로

  • 25.11.2709:34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윤희석 "'당원게시판' 징계하면 핵버튼 누른 것"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경도 PD■ 출연 :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11월 24일)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에 출연한 윤희석 전 국민의힘 대변인은 "장동혁 대표의 메시지는 호소력에 한계가 분명해 변화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또한 "이대로라면 연말 연초에 내부에서 장 대표에 대한 문제제기가 불거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동훈 전

  • 25.11.1809:52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홍장원 "거의 마무리 국면…안타깝기도"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마예나 PD 지난 7월 내란특검팀에 의해 재구속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한동안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특검의 구인 시도에도 강하게 버티며 16차례 정도 출석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증인으로 나온 지난달 30일 이후이다. 윤 전 대통령은 법정에 나와 직접

  • 25.11.0614:16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김준일 "윤, 여론·재판에서 모두 망했다" VS 강전애 "윤, 피고인으로서 계산된 발언"

    ■ 방송 : 아시아경제 '소종섭의 시사쇼'(월~금, 오후 4~5시)■ 진행 : 소종섭 정치스페셜리스트 ■ 연출 : 이미리 PD■ 출연 : 강전애 전 국민의힘 대변인, 김준일 시사평론가(11월 5일) 소종섭 : 이 얘기부터 좀 해볼까요? 윤석열 전 대통령 얘기, 최근 계속해서 보도가 좀 되고 있습니다. 지난해 국군의 날 행사 마치고 나서 장군들과 관저에서 폭탄주를 돌렸다, 그 과정에서 또 여러 가지 얘기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습니다. 강


다양한 채널에서 아시아경제를 만나보세요!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