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전성호 기자]'상남자' 곽태휘에게도 애절한 대상이 있다. 월드컵 본선이다. 2008년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에게 2010 남아공월드컵은 처음 밟을 동경의 무대였다. 꿈의 실현을 앞두고 악몽 같은 현실이 찾아들었다. 대회 직전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그렇게 곽태휘는 눈물을 머금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어느덧 3년의 세월이 흘렀고, 이제 그는 2014년 브라질을 바라본다.
최근 대표팀은 변화를 맞이했다. 홍명보 신임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을 내세웠다. 어긋나는 선수는 그 누구라도 홍명보호에 발을 디딜 수 없다. 거센 세대교체의 물결이 예고된 가운데, 주장 곽태휘도 예외일수는 없다. 그런데 그는 어쩌면 그 메시지의 핵심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선수일지도 모른다.
조금 어려운 질문일 수 있겠다. 얼마 전 대표팀 수장이 바뀌었다. 홍명보 감독 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세대교체 바람도 예상된다. 기대감과 불안함, 어느 쪽이 더 큰가.
대표팀은 항상 가고 싶은 곳이다. 월드컵도 한 번은 꼭 뛰어보고 싶다. 일단 홍 감독님이 부임하셔서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 감독님 스타일에 맞춰 내 주어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축구는 단체 운동이다. 작은 개인이 모여 서로 도우며 하나가 되면 큰 팀이 된다. 지금껏 축구를 하며 느낀 가장 큰 교훈이다. 내가 대표팀에 처음 갔을 때나 울산에 입단할 때 했던 인터뷰가 있다. 나보다는 팀을 먼저 생각하고 헌신하겠다고. 툭 까놓고 말해 나 혼자 잘하는 건 쉽다. 내가 할 것만 하고, 카메라 안 보이는 곳에선 적당히 하고. 그런데 그건 아니지 않나.
어떤 지도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곽태휘가 저지르는 수비 실수는 대부분 다른 선수의 치명적 실수까지도 대신 만회하려는 자세에서 나온다'라고.
과찬이다. 소속팀과 나라를 대표해 뛰는 선수가 그러는 건 당연한 거다.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고 책임지고 싶지 않아서 위기 상황에 뛰어들지 않는 건 말도 안 된다. 그런 거라면 나쁜 모습 얼마든지 보여도 좋다. 다만 팀을 위해 희생하고 실점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려 한다. 팀 전체가 그래야 한다. 그래야 선수고 팀이다.
유도심문 하나 해보겠다. 그동안 어떤 팀에서 축구할 때 가장 행복했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축구는 재밌었다. 처음 축구할 때도 국가대표가 되겠단 목표보다는 그저 축구가 좋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아, 일본에서 뛸 때만 재미가 없었다(웃음). 중간에 감독이 바뀌면서 기존 패스 플레이가 구식 수비 전술로 변했고, 누군가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분위기까지 생겼다. 자연스레 선수단에 불화도 생겼다.
이거 안 먹힌다. 원래 이끌어내려던 답은 울산 현대였다. 그 때 곽태휘가 참 행복해보였다.
결과가 화려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2011년 컵대회 우승에 K리그 준우승을 했고, 2012년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에서도 우승했으니까.
포기하지 않고 두 번째 유도심문이다. 들은 얘기가 있다. 그 때 당시 울산에서 뛴 다른 선수들 중엔 '내 평생 이렇게 분위기 좋은 팀에서 뛸 수 있을까'라고 말한 이가 적잖았다.
맞다. 처음 내가 울산 올 때는 '스타급 선수만 잔뜩 있어 쉽지 않을 것'이란 말이 많았다. 유명한 선수들은 자기만의 세계도 강하고, 따로 놀기 쉬워지니까.
결과는?
기우였다. (송)종국이형과 (설)기현이형부터 막내 (김)신욱이까지 누구 하나 개인이 없었다. 모임이나 미팅도 자주하고, 밥도 꼭 같이 먹고, 사우나도 하며 얘기를 정말 많이 했다. 또 내가 아빠처럼 후배들의 잘못에 쓴 소리나 질타를 하면, 기현이형은 엄마처럼 감싸주고 프로로서의 자세를 몸소 보여줬다. 선후배로서 상호간에 예의를 지키면서도 친밀한 관계를 맺다보니, 그런 게 운동장에서 경기력으로 나왔다. 서로 '정말 같이 있고 싶은 사람들이다'라고 느낄 만큼 편하게 지내면서 자연스레 경기장에서 시너지가 발휘됐다.
이번엔 원하는 답변이 나왔다. 그런 팀 분위기야말로, 홍명보 감독이 바라는 'One Team, One Spirit, One Goal'의 기본 아닐까. 곽태휘는 울산에서의 경험을 통해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는 셈이다.
듣고 보니 맞는 말 같다. 울산이 그런 팀이었다. 잘하는 선수가 아무리 많아도 각자 놀면 강팀이 안 된다. 선수들이 마음을 모으고, 서로 희생하며 하나로 합쳐지면서 더 강한 팀이 됐다. 그래서 울산에서도 아시아 정상까지 갈 수 있었다. 지난해 ACL 토너먼트 내내 한 번도 진다는 생각을 안했다. 결승전 앞두고는 상대를 보며 '얘네는 끝났다. 우린 무조건 우승이다.'란 자신감이 있었다. 우리는 팀으로서 강하다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ACL 얘기가 나와서 묻는다. 그 때 당시 유력한 대회 MVP 후보로 꼽혔는데, 정작 상은 이근호가 받았다. 물론 공격수가 유리한 점도 있지만, 주장에 개인 기록도 좋았기에 아쉬움이 있을 법했다. 솔직히 아쉽지 않았나?
그 때 당시는 잘 몰랐다. 그런데 주변에서 자꾸 그렇게 물어보니 또 아쉽긴 하더라. 2010년 성남 일화가 우승할 때 사샤(사샤 오그네노브스키)도 MVP를 받지 않았나. 나도 사샤처럼 중앙수비수에 주장이고, 활약도 그만큼 했으니...(웃음) 근호가 나중에 올해의 AFC선수상 받지 않았나. 그럼 '걘 더 큰 거 주고 난 이거 주지, 두 개 다 줄 필요 있나'...고.론.생.각? (웃음) 뭐 상을 받았으면 어땠을 까란 생각은 가끔 해본다. 잊혀질만하면 이렇게 묻는 사람도 있고 해서(웃음).
마지막으로 2014년 브라질로 향한 마음을 듣고 싶다.
나도 이제 운동선수로선 황혼기고, 사실상 내겐 마지막 월드컵 출전 기회다. 밖으로 표현은 잘 안하지만, 2010년에 대한 한(恨)은 가슴 속에 남아있다. 한 번은 꼭 가고 싶다. 지금도 남아공월드컵 대표팀 단복을 옷장에 넣어두고 있다. 원정월드컵 16강을 함께 하지 못한 아쉬움이 너무 크다. 그런 것들이 브라질월드컵에서 뛰고 싶은 간절함으로 이어진다. 자신 있다.
전성호 기자 spree8@
정재훈 사진기자 ro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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