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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송전탑 싸움, 公益과 私益 사이 '고집만 세진 8년'

시계아이콘읽는 시간01분 30초

빅시리즈-아경이 제안하는 대한민국 현장 어젠다
[갈등을 경영하라]⑤사회 전반적 갈등


개인ㆍ집단적 이익 충동…지역 주민끼리도 불통
포퓰리즘 의식 정치권 무분별 개입, 사태는 더 악화

[아시아경제 김혜원 기자] 자그마치 8년이다. 현재진행형인 '밀양 송전탑' 사태의 시간이다. 밀양 송전탑은 우리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갈등의 축소판'이다. 환경 문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정치ㆍ사회ㆍ경제, 나아가 윤리적인 갈등으로 비화된 경우다. 지금에 와선 갈등의 본질과 주체마저 희미해졌다. 이해관계자들이 '갈등에 잘못 접근'하고 있었음을 방증한다.


8년의 시간을 재구성해보자. 2005년 8월 정부는 밀양 5개면 주민을 대상으로 송전탑을 지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자리를 만들었지만 주민들은 거세게 반발했다. 그로부터 2년 뒤인 2007년 11월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밀양 송전탑 건설 사업을 승인한다. 총 사업비 5000억원 이상을 들여 신고리~북경남에 이르는 송전선로(90.5km)에 철탑 161기를 짓는 대규모 국책 사업. 이듬해 8월 공사를 시작해 2010년 12월 완공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착공 이후 공사는 무려 11차례(약 1100일) 중단됐다. 그 사이 주민 한 명은 분신해 목숨을 잃었다. 완공 예정일은 올 연말이다. 3년이나 늦어졌지만 이마저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다.

통상 사회갈등은 '사실의 오해→감정 폭발→자체 방어→이익 극대화 전략' 단계로 전개된다. 밀양 송전탑은 현재 최정점 단계다. 시초는 어찌 보면 싱겁다. 밀양 건은 '송전탑은 인체에 해롭다'는 막연한 인식에서 비롯됐다. 이후 정부와 지역주민 간 소통이 불통이 되면서 감정의 골이 깊어졌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장만을 고집하고 방어하는 현상을 거쳐 이제는 개인적 혹은 집단적 이익을 극대화하는 쪽으로 흘러간 것이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은 현재 막바지 단계다. 오는 8일 전문가협의체는 합의안을 내놓는다. 어떤 형태로든 일단락되겠지만 학습효과 차원에서라도 밀양 송전탑 갈등은 되짚어 볼 만한 가치가 있다.


전문가들은 밀양사태의 전개과정에서 이해관계자들이 사회적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 미숙했다고 지적한다. 오영석 갈등치유연구소장은 "사회갈등은 공공 분야에서 주로 발생하기 때문에 전개되는 과정 자체에 해결책을 담고 있다"며 "따라서 결과를 내는 것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원칙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밀양 사태는 공익과 사익이 팽팽히 맞섰다. 그러나 공익과 사익은 화해불가능한 적대적 모순관계가 아니다. 지역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할지도 모른다는 '사익'(私益)과 전력부족을 해결해야 한다는 '공익'(公益)이 공존할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도 정부나 지역주민 모두 공정하지 못했다. 정부의 권위는 무너졌고 신뢰를 잃었다. 박태순 사회갈등연구소장은 "국가가 일차적으로 방향을 잡아줘야 했다"면서 "초기에 지자체에만 맡겨 갈등을 키운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포퓰리즘을 의식한 정치권의 무분별한 개입이 사태를 더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박길성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치 엘리트 집단이 정권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갈등을 사유화하고 증폭시키면 안 된다"면서 "갈등을 이분법적인 흑백논리로 접근하면 극단적인 대립 양상만이 남게 된다"고 비판했다.


밀양 송전탑을 둘러싼 갈등 상황이 길어지면서 '갈등 후 스트레스' 증상도 곳곳에서 터지고 있다. 분노와 걱정만 남아 있다. 갈등을 경영하고 치유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박 소장은 "갈등을 미리 예측하긴 힘들다"며 "해결 과정에서 국가와 사회, 조직, 개인의 역량이 드러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혜원 기자 kimhy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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