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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세훈은 왜, 무엇을 지시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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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인식’+‘MB정부에 대한 과잉 충성’···결국 국가기관의 여론 조작으로 이어져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국가정보원의 조직적인 정치관여·선거개입은 그릇된 인식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과잉 충성에 기반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시가 배경으로 드러났다. 상명하복의 경직된 지휘체계는 직원들의 활동으로 이어졌고, 그 결과 국가기관이 국민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서울중앙지검 국정원관련의혹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14일 공직선거법 위반(지위를이용한선거운동금지) 및 국정원법 위반(정치관여금지) 혐의를 적용해 원 전 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국정원이 국정지원·홍보활동 업무를 수행하며 정치적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국정 현안을 다루면서 정부 당국의 입장에 대한 옹호·반대 주장을 펼친 것은 결국 특정 정당·정치인에 대한 지시·반대로서 정치관여에 해당하고 선거 시기에 있어선 선거관여와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행정고시 출신인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으로 재직할 당시 서울시 주요 실·국장을 두루 거쳐 행정1부시장까지 지냈다. 이 전 대통령이 청와대로 들어가며 행안부 장관으로 1년간 근무한 뒤 2009년 2월부터 올해 3월까지 국정원장을 지냈다.

검찰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이명박 정부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내며 2008년 광화문을 밝힌 촛불이 ‘종북좌파’의 조직적인 선전선동에 따른 것이라고 인식했다.


나아가 실제 북한의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세력은 물론 북한의 동조를 받는 정책이나 견해를 가진 사람과 단체마저 ‘종북’으로 몰아가는 그릇된 인식을 지닌 채 재임 중 국정원 직원들에게 불법적인 지시를 내려왔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면 야당, 시민단체, 노동조합할 것 없이 모두 ‘종북좌파’로 인식하고 공격대상으로 삼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원 전 원장은 종북세력의 주 활동 무대로 사이버 공간을 지목하며, 부서장들을 모두 모아 놓은 자리에서 “국정원이 사이버 공간에서 공격적으로 (업무를)수행”하도록 강조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수행을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위해 국정원이 ‘공작정치’의 중심에 놓여있던 과거 중앙정보부 시절부터 대북 심리전을 수행해 온 심리전단이 대폭 강화됐다. 일개 국 아래 있던 심리전단은 원 전 원장 취임 한달 만에 3차장 산하 독립부서가 됐고, 꾸준히 덩치를 불려 총·대선이 동시에 치러진 지난해 초엔 4개팀 70여명 규모가 됐다.


원 전 원장의 지시는 상명하복의 국정원 조직 특성에 기대 지휘체계를 타고 ‘원장-차장-단장-팀장-직원’으로 이어졌고, 결국 검찰은 원 전 원장의 ‘지시·강조말씀’ 가운데 최소 22건이 사이버 활동에 의한 정치관여 및 선거개입 범행으로 이어졌다고 결론냈다.


원 전 원장은 사실상 재직 중 치러진 선거마다 선거개입을 종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방선거를 앞둔 2010년 4월 원 전 원장은 “단일화해라 하는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북한 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결국은 뭐 종북단체”라고 발언했다.


이듬해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전후해서는 “인터넷 자체가 종북좌파 세력들이 다 잡았는데 점령하다시피 보이는데 대책을 제대로 안세우고 있었다. 전 직원이 인터넷 자체를 청소한다. 그런 자세로...”, “보수세력이 결집하면 이길 수 있는 교육감 선거에서도 결국은 분열 때문에 졌잖아요”라고 발언했다.


지난해 19대 총선을 앞두고선 “야당이 되지않는 소리하면 강에 쳐박아야지. 4대강 문제라 뭐 이렇게 떠들어도”, “우리 국정원은 금년에 잘 못 싸우면 국정원 없어지는거야”라고, 총선이 끝난 뒤엔 “통합진보당만도 13명이고 종북좌파들이 한 40여명이 여의도에 진출했는데 우리나라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흔들려고 할거고..”라고 발언했다.


4대강 사업, 제주 해군기지 등 이명박 정부 주요 국정 현안에 대한 지지와 반대세력에 대한 대응 주문도 이어졌다. “좌파교육감들이 주장하는 무상급식 문제...포퓰리즘적 허구성을 국민들에게 적극 홍보해야”, “국정성과를 제대로 알리는 것이 종북좌파에게 이기는 길” 등이다.


원 전 원장의 지시를 받은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들은 PC방, 커피숍 등에 앉아 오늘의 유머(오유),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보배드림 등의 사이트에 확인된 것만 5179건(정치관여 1704건, 32.9%)의 글을 남겼고, 검찰은 그 가운데 불법 선거운동 성격이 뚜렷한 73건을 추려냈다.


검찰이 분석한 결과 대선일이 다가올수록 게시물은 급증하고, 특정 쟁점이 부각될 때마다 야권 후보에 대한 반대·비방 글을 게재하는 편향성이 뚜렷한 것으로 드러났다.


앞서 경찰 수사 과정에서 확보된 노트북에서 복원한 문서엔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찬양하는 내용의 ‘오빤 MB스타일’ 같은 동영상으로 연결되는 주소, 베스트게시물로 선정되거나 이를 막는 요령, “저는 이번에 박근혜를 찍습니다” 같은 글을 작성한 흔적 등이 담겨 있었다.


수사팀에 따르면 ‘댓글녀 사건’이 불거진 이후 포털사이트 등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사용해 온 것으로 보이는 아이디 수백개가 게시물을 삭제하고 탈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심리전단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글을 올리고 찬반표시를 하다 흔적 제거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기소한 내역 외에도 추가로 SNS 등에서 확인된 정치관여·선거개입 게시물 수백개를 토대로 작성자 신원을 추적해 추가 기소할 방침이다.


검찰은 원세훈號 국정원 활동에 대해 “국가기관이 일반 국민의 의견인 것처럼 가장해 사이버 공간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여론 형성에 개입하는 행위는 어떤 명분을 내세운다 하더라도 헌법 이념에 비춰 결코 허용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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