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근철 기자]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 지구촌의 '빅 뉴스'였다. 이제 주요 2개국(G2)이라는 프레임을 빼놓고는 온전히 국제 정치와 경제ㆍ산업ㆍ문화 등을 제대로 논하기가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7~8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서니랜즈에서 모두 8시간의 대화를 가진 뒤 나온 양국의 합의안은 단 2가지다. 북한의 핵 보유와 개발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 천명과 수소화불화탄소(HFC) 생산 및 소비 감축에 적극 나서 기후 변화 대응에 공동 노력하겠다는 것이다.
잔뜩 기대를 갖고 지켜본 미국인들이나 지구촌 구성원들에게는 다소 싱거운 결과물로 비칠 수도 있다. 이번 회동에 일찌감치 '새로운 대국 관계의 정립'이라는 거창한 간판이 붙여져 있던 터라 더 그렇다.
실제로 서니랜즈 회동을 앞둔 미국의 여론에서는 팽팽한 긴장감마저 느껴졌다. 미국 언론들은 연일 중국발 사이버 해킹 문제와 산업 스파이 문제, 환율 정책과 무역 장벽 문제를 재조명했다. 중남미까지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시 주석의 행보에 대한 경계론도 제기됐다. 자연스럽게 오바마 대통령이 시 주석을 상대로 난감한 의제를 얼마나 따지고 약속을 받아낼 수 있을지가 주요 관전 포인트였다. 동등한 대국의 파트너임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찾아오는 시 주석과는 그야말로 동상이몽(同床異夢)의 모습이었다.
이처럼 칼날 위를 걷는 듯한 긴장감 속에서 양국 정상이 선택한 길은 '구존동이(求存同異)'로 보인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미뤄두고 의견을 같이 하는 분야부터 협력한다"는 뜻이다.
사실 이틀 간 회담에서 양국의 예민한 문제들이 모든 빠진 것은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사이버 해킹 문제에 대해 중국 정부의 책임 있는 해결을 촉구했다. 위안화 절상 문제와 남중국해를 둘러싼 주변 국가와의 위기감에 대한 우려도 직접적으로 있었다는 전언이다.
시 주석 역시 할 말은 다 했다. 미국의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양측은 자신들의 불만과 요구 사항을 언급하되 당장 상대방의 답지를 요구하지 않았다. 사이버 해킹 문제를 거론하면서도 오바마 대통령은 "이는 중국 정부 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출구를 열어주는 식이었다.
시 주석도 취재진에게 오바마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제안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앞으로 우리는 편지와 직통 전화, 양자 회동 등을 통해 계속 협의해 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냉엄한 국제 질서 속에서 미ㆍ중은 앞으로 지구촌 곳곳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할 처지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시 주석은 당장의 대립과 힘 겨루기보다는 협력과 협의의 여지가 훨씬 더 많고 더 생산적일 수 있다는 안목을 공유한 것으로 보인다. 긴 여정을 가야 할 대국의 두 정상이 일단 '현명한' 첫 발을 내디딘 것으로 보인다.
김근철 기자 kckim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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