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유럽연합(EU) 정상들이 '은행 연합(banking union)'에 합의한지 거의 1년이 가까워오고 있지만 뚜렷한 진전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지적했다. 지난해 6월 구체적인 세부 실천 계획 없이 겉만 번지르르하게 포장한 계획을 내놓은 것이 결국 밑천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은행 연합은 부채에 시달리고 있는 정부와 이익이 줄고 있는 은행과의 위험한 고리를 끊어내겠다는 목적에서 나온 방안이다. 은행들이 부실해질 경우 국가가 은행 구제에 나서면서 국가가 부실해지고 이것이 또 다시 은행 실적에 악재로 작용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 은행이 부실해질 경우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공동의 기구와 자금을 마련하자는 것이 은행 연합의 뼈대다.
하지만 유로존 회원국 간 경제력 차이 때문에 애초부터 은행 연합은 달성이 쉽지 않은 목표였다. 사실상 채권자 입장인 독일의 경우 비용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양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자국 국민의 세금을 축낼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채무자 입장인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도 거세지는 국민 반발을 감안할 때 더 이상 희생만을 강요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특히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맸지만 경기 회복 조짐은 나타나지 않고 있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이처럼 은행연합에 대한 유로존 내 소위 우등 국가와 불량 국가 간의 입장 차가 엇갈리면서 뚜렷한 결과물이 도출되지 않고 있다.
연합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뤄져있다. 첫 째는 단일화된 감독기구다. 하나의 기구가 유로존 전체 은행의 부실을 막기 위해 규제하고 감독하는 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세 가지 축 중 가장 논의가 많이 진전돼 유럽중앙은행(ECB)에 은행 감독에 대한 권한을 추가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힌 상태다.
다음은 파산한 은행 문제를 다루는 일명 은행 정리 기구에 관한 것이다. EU 집행위원회는 이달 중 은행 정리에 대한 기본적인 제안 내용을 내놓을 예정이다.
최근 파이낸셜 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부실 은행을 청산할 것이냐 아니면 자금을 투입해 되살릴 것이냐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EU 집행위원회가 가지는 쪽으로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FT는 이와 관련 은행 정리 권한의 집중화를 반대해 왔던 독일의 반발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독일 뿐만이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자국 은행의 파산시키느냐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역외 기구가 가지는 것에 대해 적지 않은 경계심을 가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지막은 은행 예금 보장제다. 은행 부실에 따른 예금 손실 불안감을 없애기 위해 공동의 펀드를 마련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돈과 관련된 문제이다 보니 너무 많은 논란을 낳고 있고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조차 꺼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은행 정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자금 문제가 걸림돌이다.
특히 자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가장 많은 자금을 내놓아야 하는 독일이 중요한 변수가 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메르켈 총리는 지난달 30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과 EU 경제 협력 방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도 "어떤 나라는 돈을 쓰고, 위험 부담은 다른 나라가 떠안는 시스템은 작동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항구적인 유로 구제금융 펀드인 유로안정기구(ESM) 자금을 부실 은행에 지원하는 문제와 관련해서도 독일은 단일화된 은행감독기구가 설립 후 제대로 그 기능을 수행한 후에야 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EU 정상들은 이달 말 다시 만날 예정이다. 하지만 이코노미스트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은행연합에 대한 논의는 크게 진전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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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희 기자 n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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