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를 타는 선녀가 물거품을 돋우는 것처럼/초승달이 물 위를 아른아른 걷는 것처럼/그 누구인가 이토록 애절한 혼령을 불러/서늘한 꽃으로 심어 한없는 슬픔을 매단 이는?/향기 품은 흰 몸은 나라를 흔들만하고/아우는 칠리향(七里香), 형은 매화/마주 앉아 저 꽃사랑을 제대로 피우고는/문을 나서 큰 강 가로질러 한번 웃노라
황정견의 '수선화'
■ 송시(宋詩)의 종결자로 불렸던 황정견(1045~1105)의 이 시를 읽노라면 시라는 예술이 진화하는 것인가에 의문을 가진다. 우리가 저 천 년 전 시인보다 더 생생하고 청아하게 수선화를 읊을 수 있는가. 내 대답은 '없다'이다. 그저 입만 딱 벌리고 흐드러진 풍광을 찍어 내는 프로의 솜씨 속을 기웃거릴 뿐이다. 맨 앞 2행에서 수선화는 선녀와 초승달의 은유를 입는다. 선녀를 끌어온 것은 버선코 위로 방울방울 돋아 오르는 고운 물거품을 표현하기 위해서이고, 달을 데려온 것은 물이랑 따라 부서지며 이어지며 머뭇거리는 망설임을 찍어 내기 위해서이다. 그래 놓고는, 청마 유치환이 '깃발'에서 "아 누구던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이라고 질문했듯, 혼령을 심어 슬픔을 매단 이는 대체 누구냐고 심문을 한다. 수선화. 물속의 선녀꽃. 이 절정의 아름다움은 도대체 누가 만드는 것일까. 매화와 칠리향과 자매지간이라 할 만한 천하미인을 앞에 두고 그만 연애감정에 빠져 정신 못 차리다가 벌떡 일어나 강을 향해 황홀하게 웃는다. 귀양으로 힘겨웠던 시절, 황정견은 50가지 수선화를 선물받고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꽃도 꽃이거니와 그를 챙겨준 그 마음이 더욱 향기롭지 않았겠는가.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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