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강동면 유금리에 가면, 기차가 산굽이 돌아 병아리 물 한 모금 마실 시간만큼 멈칫하는 부조역이라는 간이역이 있지요 이놈의 앉은 뽄새를 볼라치면, 소꿉놀이하는 어린 누인데요 늘 봄날 오후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지 않겠어요 그러다가도 하루 왕복 네 번 서는 통일호나, 느림보 비둘기 올 때만큼은요 말랑말랑한 가슴 헤쳐 언제 그랬냐는 듯 말간 얼굴로, 타고 내리는 두꺼운 손 한번 슬쩍 잡아보곤, 떠나는 기차 마지막 칸을 더덕꽃잎 눈으로 그렁그렁 바라보더라고요 글쎄 (......) 가끔 떠돌이 개가 그 마음 앞에서, 걸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뼈를 주무르는 햇살 아래 등 맡기고 홀짝홀짝 졸음 마시는 때도 있지요(.....)
김종현의 '유금리 시편.1 - 부조역(扶助驛)' 중에서
■ 간이역이 소꿉놀이 어린 누이로 살아나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아주 띄엄띄엄 들어오는 열차에 반색하는 모양과 그것이 금방 떠나는 것에 서운해하는 모양이 귀엽고 정겹다. 언어들이 동화책 속에 들어 있는 삽화 같다. 떠돌이 개 한 마리가 풍경을 완성한다. 너무 야위어 걸을 때마다 뼈가 삐걱거릴 듯한 늙은 녀석이, 간이역 옆에서 덩달아 홀짝홀짝 졸음을 마신다. 하, 졸음을 마신다니, 참 맛있는 말이다. 대개의 삶이란 간이역보다는 성마른 열차 같아서 왔다 가는 훌쩍 떠나고 정처 없이 떠돌아다닌다. 시인은 덧없는 삶의 풍경들을 지키며 서 있는 간이역의 들꽃이 되고 싶다. 여기 변함없이 정주(定住)하여, 늘 흐르는 세상에 부조하고 싶다. 어쩌면 참 멋없기도 한 간이역의 간판(부조역)은, 한 시인의 꿈을 입으며 등대같이 환한 이타(利他)의 불빛을 달았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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