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특권, 오해와 진실①]월급 850만원 J의원, 자녀 학비 못내는 까닭
국회 쇄신의 바람이 거세다. 여야 모두 의원 특권 내려놓기와 국회 선진화에 적극적이다. 정치 변화를 바라는 여론 때문이다. 방향은 옳을지라도 각론은 따져봐야 한다. 현재 거론되는 국회의원 특권의 진실은 무엇인가. 의원 특권의 실체를 분석하고, 바람직한 방안을 제언한다.<편집자주>
① 월급 850만원 J의원, 자녀 학비 못내는 까닭
② 安의 의원정수 축소 방안, 정말 '새 정치'일까
③ 면책특권 없애면 '떡검 공개 노회찬'은 없다
④ '청목회법'은 왜 안되나…소액 정치후원 활성화 필요
⑤ 진짜 논의해야 할 숨겨진 특권들
[아시아경제 이민우 기자] J의원은 지난해 친구들에게 어려운 부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두 아들의 대학등록금을 내기 위해서였다. 중앙당 특별당비 납부와 의원실 운영을 위해 은행권에서 받은 대출은 이미 한도에 다다른 상태였다. 결국 그는 변호사를 하는 친구로부터 2000만원을 빌렸다. 연봉 1억원이 넘는 국회의원이 돈을 빌리고 다니는 모습에 친구들 대부분은 처음에 '황당하다'는 반응부터 보였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알려진 세비를 받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왜 돈을 빌려야 했을까. 지난해 국회의원 1인당 수당은 매월 1031만원, 연봉으로는 1억3796만원이다. 연봉 기준으로 장관보다는 2000만원 정도 낮고, 차관보다 200만원 가량 높은 수치다.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영국과 프랑스에 비해 조금 낮고 독일에 비해 약간 높은 수준이다. 일본(2억4435만원)의 56%, 미국(1억9443만원)의 71% 정도다.
세비가 주요국에 비해 중간 정도인데도 자금 사정이 넉넉하지 않은 것은 우리 특유의 정치문화가 작용한 결과다. 국회의원이 되면 고정적으로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만만치 않다. 정당과 개인별로 차이가 있지만 중앙당 특별당비와 각종 사회단체 등에 후원하는 돈이 꽤 많다. J의원의 경우 매월 400여 만원이 이렇게 빠져나갔다. 게다가 지역구에서 벗어나 서울에 오피스텔을 마련해 월세도 꼬박꼬박 내고,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로 각종 사석에서 밥을 사야했다. 매월 고정적으로 받는 급여 850만원에서 이런 지출을 제하면 그가 생활비 명목으로 집에 주는 돈은 200여 만원에 불과하다. 다른 의원들도 "비슷한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회의원 특권 폐지로 세비 삭감이 거론되지만 현실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대한민국 국회의원 '연봉'에 대한 인식은 국회의원에 대한 개인급여와 의원실 운영비 등의 활동경비를 혼동한 탓이 크다. 보좌진의 급여와 정치후원금까지 모두 합쳐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매년 32억원이라는 세금이 든다'는 잘못된 공식이 등장했다.
국회의원의 정책개발비와 사무실 운영경비, 차량유류비 등은 의원 개인이 아닌 의원실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돼 사무처에 신고해야만 한다. 다만 활동경비 명목이 너무 많고 일부는 국회 전체 운영경비로 계상돼 감시가 어려운 시스템은 문제로 지적된다. 서강대 서복경 교수는 "법규의 정비와 체계화를 통해 유권자의 알 권리를 보장하고 외부자들이 참여하는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65세 이상의 전직 국회의원에게 매월 120만원씩 지급되는 국회의원 연금은 국회의원 세비에 대한 불신을 증폭시켰다. 이에 대해 여야도 문제의식을 느끼고 소득기준과 재산기준을 소급적용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김기린 정치팀장은 "연금의 수혜자인 국회의원들은 연금 조성에 기여하지 않고 국민들이 부담하는데 국민연금·공무원연금에 비해 지나친 특혜"라며 "한 번 금배지는 영원한 금배지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면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비 삭감과 관련해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의원 세비 30% 삭감을 당론으로 결정하고 관련법안을 제출했다. 새누리당도 온도차는 있지만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난 15일 새롭게 선출된 새누리당 최경환·민주통합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상견례에서 세비 삭감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활동경비를 투명하게 집행하고 의원연금 특혜는 없애야 하지만 세비 삭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 교수는 "의원의 '무보수 자원봉사자' 개념이 좋은 정치인의 충원을 가로막고 영리행위 겸직제한을 어렵게 하는 장벽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치가 재정적으로 여유 있는, 직업적으로 안정된 자들의 전유물로 전락해 외국과 같이 버스운전사·농민 출신의 국회의원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서 교수의 설명이다.
이민우 기자 mwle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