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현정 기자] # 20년 넘게 지인들과 '계(契)'모임을 만들어 재테크를 해오던 오모(56세)씨는 요즘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 26명의 계원들과 지난해 시작한 계가 깨질 위험에 놓인 것. 상대적으로 많은 이자를 내야하는 선순위 계원들이 이자감당 부담을 이유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 계원들 마저 '받아서 돈을 굴릴 곳이 없다'며 먼저 곗돈 받기를 꺼리고 있다.
한 때 저금리 시대의 재테크 수단으로 각광받던 사금융 '계'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려앉은 저금리 기조에서 오히려 자취를 감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받을 수 있던 계의 이점은 사라지고, 곗돈을 받아도 굴릴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계는 크게 '낙찰계'와 '번호계'로 나뉘는데, 지인들로 꾸려진 계는 일반적으로 번호계 형식으로 운영된다. 이 번호계는 정해진 기간동안 일정금액을 넣고 순번대로 곗돈을 타가는 것을 말한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계원은 선순위를 배정받고, 곗돈을 받은 이후에는 매월 1%의 이자를 얹어 남은 기간동안 불입하게 된다. 중간에 계주가 도주하거나,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위험부담을 안는 후순위 계원은 당연히 가장 많은 이자를 챙길 수 있게 된다.
이 계는 급전이 필요해 연 10~15% 수준의 이자를 감당하고라도 돈을 마련하려는 일부 계원과, 여유자금을 가지고 은행금리 이상의 이자를 받아 재테크를 하려는 나머지 계원들 간의 수요가 맞물려 구성된다.
그러나 최근 가계대출 금리와 예금금리는 바닥없이 추락하는 추세다. 지난달 가계대출 금리는 4.55%로 지난해 12월 기록한 사상최저(4.54%) 수준에 근접했다. 일반 신용대출의 경우도 6.62%로 전월보다 0.13%p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예금은행의 저축성 수신금리는 2.87%로 46개월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담보만 충분하다면 5% 안팎의 금리로도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일반적인 저축성 예금으로는 연 3% 수준의 이자도 받기 어렵다. 급전을 쓰려는 소수의 계원을 제외한 나머지는 고금리 재테크를 노린 계원들인데, 선순위에 돈을 받을 경우 남은 기간동안의 이자비용을 어느 정도 보전할 만큼 돈 굴릴 곳이 없어진 것이다. 저축성 예금의 저금리 뿐 아니라 주식, 부동산 등 다른 시장에서 대안을 찾기 어렵다는 것도 이 같은 현상의 이유다.
오씨는 "지인들과 꾸리는 계는 앞 번호 일부를 제외하고는 명확하게 순서를 정하지 않고 일단 인원부터 모아서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러나 요새 담보를 잡으면 은행 대출금리가 사금융보다 크게 낮아 계를 들었다가 은행대출로 갈아타려는 경우가 더러 있고, 계원들간의 신뢰만 있다면 다들 후순위에 곗돈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통장에 돈만 쌓이고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김현정 기자 alpha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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