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어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공정거래위원회의 올해 업무계획 보고를 통해 경제민주화의 속도를 그동안 거론하던 수준보다 낮추어 제시했다. 아울러 공정위의 업무 분야에서 현 정부가 추진할 것과 추진하지 않을 것을 분명히 해서 이 문제에 대한 정책 틀을 정돈했다.
공정위는 특히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30% 룰'과 '입증책임 전환'을 배제한다고 밝힘으로써 재계로 하여금 한시름 놓게 했다. 30% 룰은 총수 지분이 30% 이상인 기업이 부당 내부거래를 한 경우 총수의 지시나 관여가 있었다고 추정하여 처벌하거나 과세하는 방안이고, 입증책임 전환은 기업이 정당성을 입증하지 못한 내부거래는 부당한 것으로 간주하는 방안이다. 이 두 방안에 대해서는 위헌의 소지가 있는 데다 기업의 정상적인 활동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공정위가 이 두 방안을 포기한 것은 불가피한 결정으로 이해된다.
공정위는 대신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 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규제를 신설하여 대기업집단의 부당 내부거래를 철저히 차단하기로 했다. 이 규제는 일감 몰아주기와 총수 일가에 속하는 개인에 대한 지원 등을 겨냥한 것이다. 아울러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해서 총수 일가가 실질적 자본 투자는 없이 기업을 세습하는 행위를 막기로 했다. 그동안 일부 대기업 총수들이 그런 방법으로 자식에게 부와 경영권을 넘겨주곤 하여 초래된 기업 지배구조의 왜곡과 국민적 지탄을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로 여겨진다.
공정위는 대기업집단을 전담하는 가칭 '기업집단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이것에 대해서는 8년 전에 폐지된 과거 '조사국'의 부활로 보고 사갈시하는 반응도 있다. 그러다 보니 '대기업을 범죄집단으로 보는 거냐'는 항변이나 '공정위의 제 밥그릇 늘리기 아니냐'는 비난도 들린다. 그러나 대기업집단 관련 업무를 효율화한다는 목적에 충실하게만 운영된다면 문제 삼을 일은 아니라고 본다.
공정위는 이 밖에 불공정 하도급 행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 등 다양한 경제민주화 입법 계획을 내놓았다. 그 실천도 중요하지만, 재계 등 이해관계 집단의 협조를 유도하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경제민주화도 단속과 처벌보다 자발적 변화와 협조가 더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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