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정종오 기자]박근혜 정부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되는 부분 중 하나가 '돈'이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 나라살림이 이뤄지다보니 그렇다. '박근혜 공약 재원 135조원 마련' '82조원 세출구조조정' '주택관련 대책 1조원 추가 지원' 등 '조 규모'의 액수가 정부 대책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나라살림을 총괄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비상이 걸렸다. 돈이 들어올 곳은 없는데 써야 할 곳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기재부 역시 '돈의 재발견'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존에 계획했던 예산을 새로 짜야 한다. '정부 가계부'의 수정이 불가피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돈의 대부분이 '조 규모' 단위로 언급되면서 숫자에만 너무 집착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조 단위'로 언급되는 액수 속에 숫자 맞추기에만 집중하다 보니 실제 서민들의 삶과 괴리되는 측면이 많다는 것이다.
◆1조의 재발견=1조는 숫자로 풀어보면 '1000000000000'이다. '0'이 줄줄이 이어진다. 무려 12개. 좀 많이 붙어 있는 모습이긴 하다. 숫자로만 본다면 1조원은 0이 많이 붙을 뿐 실제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 그냥 숫자에 불과하다.
숫자에 불과한 '0의 연속되는 12개'를 삶 속으로 옮겨보면 느낌은 확연히 달라진다. '숫자 개념의 돈' 1조원이 아닌 '삶 개념의 1조원'의 차이는 어려운 현실 앞에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무서운 존재이다.
2013년 현재 우리나라의 서민들은 돈이 없다 보니 먹는데 많이 지출한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2012년 엥겔지수는 20.79%로 2011년보다 무려 9% 포인트 뛰었다. 엥겔지수는 소비지출에서 식료품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을 뜻한다. 2004년 20.80% 이후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실정이다 보니 문화와 여가 생활은 뒷전으로 밀린다.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헷갈리는 상황이 벌어진다.
한 지방자치단체가 가난한 사람들 1만 명에게 매월 100만원씩 지원한다고 계산하면 한 달 총액은 100억원이다. 1년이면 1200억원에 이른다. 8년 동안 지원을 계속한다고 가정하면 그제야 9600억원에 이른다. 그래도 1조원에서 400억원이 남는다. 1조원은 가난한 사람 1만 명이 매월 100만원씩 8년을 지급받을 수 있는 규모이다.
아이들에게 적용하면 체감되는 효과는 더 크다. 방학만 되면 밥을 굶는 아이들이 무척 많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정확한 통계는 나오고 있지 않은데 전국적으로 약 40만 명의 아이들이 방학 기간 동안 점심을 먹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조원을 한 끼 식사를 할 수 없는 아이들에게 방학 급식비로 사용하면 어떤 효과가 나올까. 방학 한 달 기간 동안 매일 40만 명의 아이에게 각각 5000원씩에 이르는 점심 급식을 한다고 계산해 보면 매일 20억원이 들어간다. 이를 방학 한 달인 30일로 계산하면 600억원이다. 여름과 겨울방학 두 번에 걸쳐 지원한다면 1200억원이 투입되는 셈이다. 8년 동안 계속 지원한다고 하면 9600억원에 이른다. 1조원에 역시 400억원이 남는다. 40만 명의 아이들이 여름과 겨울방학 각각 한 달 동안 5000원에 해당되는 밥을 매일 먹어도 8년 동안 지원 가능한 금액이 1조원이다.
박근혜 정부는 복지재원 마련, 경기 부양, 주택관련 대책 등에 조 단위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큰 그림도 중요하겠지만 미세한 서민의 삶속에서 예산을 생각할 때 '조 단위'의 돈은 숫자에 머물지 말고 서민의 삶 속에서 꿈틀거리는 자양분이 될 것이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세종=정종오 기자 iko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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