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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빠진 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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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조직 개혁이 실패로 끝나는 이유는 아랫사람들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재상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한 포숙의 위대한 팔로어십을 새기십시오. 또 리더는 지인(知人)·용인(用人)·중용(重用)·위임(委任)·원소인(遠小人)의 원칙을 기억하세요. 결국은 사람이 답입니다."


20일 오후 소공동 한국은행 별관 대강당. 똑 떨어지는 계산에 익숙한 한은 직원들이 '답 없는' 인문학에 빠져들었다.

올해 첫 명사초청 강연의 주제는 '사기(史記)와 개혁'. 손꼽히는 사마천 연구자 김영수 박사는 1시간 45분 동안 춘추전국시대 제후국의 흥망사를 풀어놨다.


"사기 130권을 관통하는 건 사람입니다. 장서의 86%가 인간관계를 말하고 있어요. 우리에겐 없는 인재학과 개혁학입니다. 궁형의 치욕을 딛고 권력을 꼬집으며 인간관계의 해법을 조언한 사마천의 '사기'는 현대에도 아주 유용한 자기계발서에요."

주나라에서 제나라로, 위문후에서 효공으로 이야기가 번지는 동안 200여명의 한은 직원들은 신입생처럼 눈을 반짝였다. 옆 사람 침 삼키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한 강당에선 사각사각 받아적는 소리만 들려왔다. 김중수 총재와 간부들도 맨 앞줄에 앉아 두 시간 가까이 진행된 강연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경청했다.


이날 강연은 문사철(文史哲·문학과 역사와 철학)을 익혀 지성인의 소양을 갖추자는 김 총재의 제안에 따라 준비됐다. 관가에선 꺼린다는 '개혁'을 주제로 삼은 것도 김 총재의 아이디어다.


한은은 지난해 상반기, 10년 가까이 중단했던 명사초청 강연을 다시 시작했다. 6월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통해 '진화론으로 본 변화와 다양성'을 공부했고, 11월엔 김상근 연세대 신학과 교수의 '르네상스 시대 정신과 메디치가문 이야기'를 공유했다.


매회 직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행사를 준비한 한은 관계자는 "강연마다 200명 넘는 직원들이 모여 뜨거운 관심을 보인다"면서 "숫자와 그래프에 파묻혀 '올랐어, 내렸어'만 말하던 직원들이 동료와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세상을 좀 더 깊이있게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한은은 지난해 상·하반기 한 번씩 열었던 강의를 올해부터는 분기마다 열기로 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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