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국민 화합과 대통합. 시대가 달라져도 임기 말 특별 사면의 명분은 한결 같다. 역대 정부에서도 대통령은 밀린 숙제하듯 임기 말 특사를 단행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특사는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빚진 이들을 구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다. 퇴임 전 정치적 부채를 털고 가기 위한 방편이었다.
13대 노태우 대통령은 1992년 12월 24일 모두 26명에 대한 특사를 명했다. 밀입북 사건으로 구속 수감 중이던 임수경 현 민주통합당 의원과 문규현 신부가 포함됐다. 언뜻 민주화 세력과의 화해를 꾀한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 특사가 겨냥한 건 5공 비리로 구속 수감된 인사들이었다. 이날 특사로 풀려난 사람 중 19명이 5공 비리 관련자였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씨와 처남 이창석씨 등이 구명됐다.
14대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임기 말 특사로 전직 대통령 2명을 석방했다. 12·12 군사반란사건과 5·18 광주 민주화항쟁 당시의 무력 진압, 막대한 비자금 조성 사실이 드러나 구속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렇게 사면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으로 두 전직 대통령 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지만, 임기 중 부담을 털고 갔다. 노 전 대통령은 현직 대통령으로 임기 말 특사를 단행한 뒤 5년 만에 스스로 특사 대상이 되는 수모를 겪었다. 두 전직 대통령과 함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과 장세동 전 안기부장, 안현태·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과 이양호 전 국방부 장관도 특사로 석방되거나 잔형집행을 면제 받았다.
15대 김대중 대통령은 여러 기업인들을 사면했다. 김 전 대통령은 2002년 말 정태수 전 한보그룹 총회장과 김선홍 전 기아 회장을 풀어줬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대우그룹 분식회계 사건에 연루됐던 대우그룹 임원들도 석방됐다.
대선의 맞수 이회창 전 신한국당 후보를 지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세풍' 사건 관련자들도 구명 대상에 들어갔다. 배재욱 전 청와대 사정비서관과 김영재 전 금감원 부원장보도 사면됐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연루돼 수감 생활을 한 40명의 공안사범도 특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은 임기 중반인 2000년 광복절 특사로 이명박 대통령을 복권시켜 결과적으로 차기 정권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이 대통령은 "내가 그 때 사면되지 않았더라면 대통령이 될 수 있었겠느냐"면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반대에도 특사를 강행하겠다는 의지를 굳히고 있다.
16대 고 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특사엔 전 정권 인사들이 여럿 포함됐다. 김대중 정부 인사로는 노 전 대통령 임기 중 재판을 받은 신건·임동원 전 국가정보원장과 박지원(전 대통령 비서실장) 의원,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와 신승남 검찰총장 등이 포함됐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인 최도술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사면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부시장을 지낸 양윤재씨도 사면됐다.
현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후 모두 여섯 차례의 특사를 실시했다. 지난 연말 성탄절 특사로 측근들이 풀려날 것이라던 전망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이 대통령은 임기 중 마지막이자 일곱 번째 특사로 정치적 부채 탕감을 시도하고 있다.
특사 대상은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논란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이다. 수뢰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이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인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 등이 특사 대상자로 꼽힌다.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에 관여한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구명 대상이다. 단 대통령 친인척이나 비리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재벌 총수는 특사 대상에서 제외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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