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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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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들의 사생활-1장 동묘(東廟) 부근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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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일이라니....? 무슨 살인사건이라도 일어났단 말인가? 그런 일이라면 하림에게 부탁할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런 그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윤여사가 말했다.
“안심하세요. 끔찍한 일이라 하여 사람이 죽고 살고 하는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럼, 무슨 일인데요?”
하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람 대신 누군가가 개를 쏘아 죽였어요. 엽총으로요.”
“개를.....?”
“예. 두 마리나..... 그렇다고 뭐, 특별한 개는 아니에요. 그저 우리가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토종개, 흔히 똥개라고 불리는 누렁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누가 그런 끔찍한 짓을......?”
하림은 자기도 모르게 호기심을 느끼며 말했다.
“그게.... 그러니까, 천천히 말씀드리죠.”
그러고 나서 윤여사는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눈치더니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 고향은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M읍의 월운리라는 곳이에요. 살구나무가 많아 살구골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죠. 봄이면 하얀 살구꽃이 구름처럼 피어나 온 동네가 마치 살구꽃 구름 위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을 주는, 옛날 이발소 그림 속에 나오는 풍경처럼 되곤 한답니다. 제법 큰 저수지가 있고, 마을 뒤로는 높지는 않지만 아담한 산이 있어 마을이 끝나는 지점부터는 골짜기로 이어지죠.”
이야기가 제법 길게 둘러갈 요량이었다. 하림은 처음에 끔찍한 이야기라고 하여 긴장하였으나 곧 긴장이 풀린 마음으로 윤여사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하긴 생각하면 사람도 아니고, 그까짓 개 죽는 일이야 주변에서 흔히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길거리 외곽으로 차만 타고 나가도 우연찮게 만날 수 있는 것이 로드킬, 유기견의 사체였다. 내장을 다 드러낸 채 아스팔트에 죽어 널브러져 죽어있는 유기견의 사체를 볼 때마다 사람들은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순간을 지나고 나면 곧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는 것이 개의 죽음이었다. 줄여서 개죽음이라 부르는....
그러니까 그런 일로 자기를 만나 일부러 부탁할 성질은 아니었다. 자기가 뭐 개전문가도 아니고....거기에다 지금 사는 곳도 아니고 가까이 있다지만 예전에 떠나왔다는 고향에서 벌어진 일을 가지고 호들갑을 떨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윤여사가 호들갑을 떨어야할 이유가 곧 밝혀졌다.
“사실은 죽은 개의 주인이 혼자 사시는 우리 고모할머니랍니다. 불쌍한 할머니..... 혼자서 그 두 마리 누렁이를 친자식처럼 키우며 살다가 졸지에 그런 사고를 당하고는 거의 실성이 되다시피 하셨죠.”
윤여사의 얼굴에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런 나이의 분들이 다들 한 아름씩 사연을 가지고 살듯이 우리 고모할머니 역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지요. 원래 우리 고향은 윤가네 집성촌이었는데, 할머니가 젊었을 때 당시 동네 일꾼으로 있던 우리 고모부님과 눈이 맞아 도회지로 야반도주를 했어요. 그리고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땐 고모부님은 노름꾼에다 술주정뱅이로 거의 폐인이 되다시피 했지요. 하나 있던 아들은 죽고, 딸은 미군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버렸다고 해요. 고향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고모부도 죽었어요. 그러나 고모님은 이미 오래전에 집안과 동네에서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장례식에도 별로 사람들이 많이 오지 않았어요. 그때 나는 어렸을 땐 데 읍에서 고물상을 하던 아버지를 따라 고모부님 장례식에 갔던 기억이 나요. 팔월, 무척 무더운 날이었죠. 산비탈 밭에 피어있던 하얀 깨꽃이 기억나요.”




글 김영현/그림 박건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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