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조사 결과 발표로 최종결정에서 뒤집힐 수 있어...'오렌지북' 판례에도 이목
[아시아경제 권해영 기자]유럽연합(EU)이 삼성-애플 소송에서 삼성전자가 표준특허 남용에 따른 반독점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즉각 EU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U의 이번 입장 발표는 예비조사 결과로 최종결정은 아니며 향후 추가 조사를 통해 뒤집힐 가능성도 남아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삼성전자에 보낸 이의제기서(SO, Statement of Objections)를 통해 삼성전자가 통신 표준특허와 관련해 지배적인 지위를 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호아킨 알무니아 EU 집행위원회 경쟁위원장은 "지적재산권은 단일 시장의 중요한 주춧돌이지만 이 같은 권리가 산업의 표준이 되고 기업, 소비자들게 엄청난 이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라면 남용돼서는 안된다"며 "기업이 특허를 통해 산업의 표준을 만드는데 기여하고 공정한 보상을 받고 특허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기로 했다면 (해당 특허와 관련해)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경쟁에 반하는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U는 올해 2월부터 삼성전자의 반독점법 위반 여부를 조사해왔다. 삼성전자는 통신 표준특허 침해를 이유로 유럽 주요 국가에서 애플을 제소했다. 애플은 이 특허는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으로 제공해야 한다는 내용인 '프랜드(FRAND)'의 적용을 받는다고 맞선다.
삼성전자는 즉각 EU의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당사는 표준특허를 사용함에 있어 EU의 반독점 관련 법과 규정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EU의 입장 발표는 최종결과는 아니며 향후 뒤집힐 가능성도 남아 있다. EU가 삼성전자에 보낸 SO는 EU의 반독점 관련 예비조사 결과 내용으로 반독점법 관련 조사에서 절차상 중간 단계에 해당한다. EU의 최종 입장은 아니며 법적 구속력과 실질적인 제재는 없다. 유럽경쟁국 위원회는 향후 삼성전자의 답변서 제출, 구두 심리 절차 등을 거쳐 반독점 위반 여부에 대해 최종 결정을 하게 된다.
최종 결정에서 삼성전자의 반독점법 위반 결론이 나도 과징금 부과보다는 시정 조치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 EU가 표준특허 남용을 이유로 과징금을 매긴 사례가 거의 없는 데다 특허의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삼성전자가 유럽 주요 국가에서 애플을 상대로 제기한 제품 판매 금지 신청을 철회해 애플이 실질적으로 피해를 입은 사실이 없기 때문에 과징금 부과 가능성은 거의 없다.
EU의 예비조사 결과와는 달리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의 표준특허 남용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동준 수특허법률사무소 변리사는 "과거 오렌지북 판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표준특허라고 하더라도 사용자가 특허 소유자에게 적극적으로 사용권을 요청하고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오렌지북 판례는 지난 1989년 필립스가 '오렌지북'이라는 CR롬 관련 표준특허로 독일 SK카세텐에 승소한 것을 일컫는다. 프랜드 적용이 논란이 돼도 우선 책임은 기술 사용자에 있다는 게 판결 내용의 골자로 독일 만하임 법원은 삼성-애플 소송에서 이 판례를 언급했다.
권해영 기자 rogue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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