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장기불황시대, 소비자를 읽는 98개의 코드
[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경제학자 쇼스타인 베블렌은 자신의 저서 '유한계급론'에서 "부자들은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낭비하는지 주변에 보여줌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여유로운 삶을 사는 사람인가를 드러내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낭비'를 보여주는 것이 여유를 드러내는 것이라면, 반대로 낭비 없는 삶이란 '삶의 여유'가 없는 삶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시장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에서 100만명의 조사 패널을 대상으로 소비자 심리를 조사한 결과, 2012년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삶에서 '낭비'와 '여유'라는 두 단어가 모두 사라졌다. 2013년을 앞둔 대한민국 소비자들의 심리를 관통하는 키워드로는 '답답함과 불안'이 꼽혔다. 낭비와 여유가 사라지고, 불안이 팽배한 시대에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소비할까?
◆소비자의 선의는 초저가의 유혹을 이길 수 없다=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한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낭비를 줄이기 위해 소비자들은 소포장 제품이 필요하다(62.9%)고 응답했으며, 실속있는 소형 가전에 대한 선호(58.2%)도 높게 나타났다. 소비자의 87%는 중고용품을 구입해봤거나 고려하고 있다고 답했으며, 90%는 초저가의 대형할인마트의 제품에 대해 구매의향을 가지고 있었다. 많은 소비자들이 작은 부분까지 낭비를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낭비를 줄이려는 움직임은 단순히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차원이라기보다는 실질적인 가처분소득이 줄어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낭비'를 줄이려는 소비자들의 태도는 심리적인 여유가 없는 현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이같은 소비자들의 태도는 머리로는 대형마트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실제로는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구매하게 되는 이율배반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조사결과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초저가 상품은 소비자의 과소비를 유발한다거나, 영세상인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마케팅이라거나 소비자를 끌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의견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소비자들이 대형마트의 초저가 상품을 구매한 경험은 2011년 대비 19.3%나 증가한 67.6%에 달했다.
대형마트의 영업활동에 대해 이성적으로는 비판적일 수 있지만, 자신의 가계 입장에서 보면 당장의 현실적인 여유는 없는 것이다. 2013년에도 소비자들의 이같은 선택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78.5%의 소비자들은 2013년의 소득이 현재 수준이거나 현재보다 줄어들 것이라고 응답했고, 82.8%의 소비자들이 2013년에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상황에서 소비자들의 발길을 재래시장으로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소비자의 선의에 호소하기보다는 실제로 소비자의 여유를 되찾아주는 일이 시급해 보인다. 결국 심리적, 경제적 여유가 없는 소비자들에게 사회적 선의에 대한 강요는 또 다른 심리적 스트레스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답답함, 불안 탈출하기 위해 스마트폰에 빠져= 2012년 소비자들이 경험하는 일상적인 정서에 대해 조사한 결과, 가장 많은 소비자들이 답답함(44%)과 근심걱정(44%)을 이야기했다. 이외에도 심란하다, 귀찮다, 지겹다, 우울하다, 불안하다, 외롭다 순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비자들이 경험한 상위 10개의 정서 중 긍정적인 감정은 10번째인 행복하다(27.9%)가 유일했다. 이처럼 부정적인 정서나 감정이 많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이를 해소할까?
조사결과에 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각종 부정적인 정서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마트폰과 같은 'IT기기'를 찾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각적인 회피가 가능한 제품이 바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와 같은 IT기기인 것이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이용해 주로 하는 것이 SNS 이용이라는 조사결과를 감안하면, 소비자들은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났을 때 스마트폰을 이용해 사람들과 소통함으로써 부정적 감정을 해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경향이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엠브레인트렌드모니터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이 없으면 불안하다'고 응답한 소비자들은 2011년에 비해 1.2%증가한 62.7%로,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것 같다'고 응답한 소비자들은 2011년에 비해 11.1% 증가한 49.1%에 달했다. 절반에 가까운 소비자들이 스마트폰이 없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일상생활을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현상은 2013년에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3년 가장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서비스는 '카톡' 등 메신저 서비스(44.2%)였으며, 다음으로는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SNS( 42.8%), 정보검색(26.5%) 순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스마트폰 자체라기보다는 스마트폰을 통해서 맺게 되는 사람들간의 관계임을 추론할 수 있다.
우리가 스마트폰에 집착하는 것이 알고보면 일상적인 불안을 줄이기 위한 '관계 맺기'라는 욕구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볼 때, 우리가 진짜 만지고 싶은 것은 스마트폰의 액정 화면이 아니라 진짜 사람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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