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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5.0] ‘올림피아드 문제집’ 만든 양승갑 교수…인생 2막은 봉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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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영철 기자] 1990년대 전 세계 학생들이 수학실력을 겨루는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우리나라는 30위권이었다. 학생들의 실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수학올림피아드문제를 접해보지 못한 ‘무경험’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제대로 된 수학올림피아드교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수학계의 이 고민을 해결한 이가 양승갑(62) 당시 명지대 교수였다. 양 교수는 1993년에 ‘올림피아드 종합문제집’이란 국내 첫 국제수학올림피아드교재를 만들었다. 헝가리, 러시아 등 외국의 수학교재들을 들여와 우리 학생들에 맞게 고쳤다. 대회에 나가는 학생이 많지 않아 어찌보면 돈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사명감으로 임했다.

이 교재로 국제수학올림피아드를 준비한 학생들 실력이 나아지면서 최근엔 1, 2등을 놓치지 않고 있다.


수학계에서는 그가 끼운 첫 단추 덕에 우리나라가 올해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 1위를 차지하는 디딤돌이 됐다고 평가한다.

이런 양 교수가 정년을 6년 앞두고 지난해 2월 교수직을 내려놨다. 양 전 교수는 “명지대에서만 26년6개월간 교수로 있으면서 후배들 길을 막고 있는 것 같아 결심을 했다”고 그 때를 설명했다. ‘아름다운 은퇴’를 하고 싶어서였다. 후학들에게 길을 터주고 자신은 새 인생을 살고자 결심했다.


저명한 교수가 은퇴했다는 게 알려지자 전국의 10여 중·고교에서 교장직을 제의해 왔지만 모두 거절했다. 자유롭게 살고 싶어 퇴직했는데 다시 책임감 있는 자리에 서고 싶지는 않았다.


양 전 교수는 퇴직 뒤 1년간 여행을 다녔다. 그는 “1년간 뭘할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누구는 은퇴한 뒤 동남아시아 등지로 이민 가서 골프치고 편하게 살겠다는 말을 하던데 그건 아니다 싶었다”고 설명했다. 은퇴 2막은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는 어르신들을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수학으로 봉사하는 길이 많지 않았던 것도 한 이유가 됐다. 그는 올 3월 대원대 물리치료학과에 입학해 넉 달간 20살, 21살 된 젊은이들과 기숙사생활을 하면서 ‘스포츠재활트레이너 2급’ 자격증을 땄다.


그러다 모교인 충남 서천의 한산중학교에서 수학인턴교사를 뽑는다는 소식을 충남도교육청홈페이지를 통해 알게 됐다.


몇 년간 수학인턴교사를 찾았지만 시골학교에 봉급도 적은 인턴을 지원하는 이가 없었다. 양 전 교수는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게 인생 2막이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그는 이 학교를 1965년에 졸업했다.


이 학교에서 양 전 교수는 실력이 부족한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그동안 그가 발행했던 교재들은 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책으로 모교의 학생들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을 위한 교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중학교 3학년이 1/2+1/2의 답을 모른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이 더 많다는 걸 알았다”며 “이들을 위한 교재를 만드는 게 내 마지막 꿈이 됐다”고 말했다. 쉬우면서 같이 공부할 수 있는 ‘함께 하는 교재’가 뭣보다 필요했다.


그의 맡은 수업시간은 일주일에 14시간이다. 1·2학년은 1주일에 4시간씩, 3학년은 3시간씩 두 반을 가르친다. 학생 수가 적어 거의 1대 1 학습을 한다.


수학을 지루한 과목으로 여겼던 학생들은 양 전 교수의 열의에 서서히 수학에 재미를 붙였다. 실력도 쑥쑥 늘었다. 지금은 모르던 수학공식도 제대로 이해한다. 양 전 교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즐거웠다. 어르신들을 위한 봉사는 잠시 미뤘다. 당장 해야할 일들을 풀어내는 게 먼저였다.


그는 또 “학교현장에서 아이들을 가르쳐보니 교수들이 만든 교재는 우리 교육의 현실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만들어낸 것이란 반성을 많이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그의 교재는 2014년에 나올 계획이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을 위한 국내 첫 교재가 될 것이다.


그는 “수학을 못한다고 해서, 공부를 못한다고 해서 그 학생이 무능력한 것은 절대 아니다”며 “사람마다 타고난 능력이 모두 다른데 국어·영어·수학 성적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학부모를 비롯한 어른들 생각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들만 따로 모아 가르치다 보니 중간고사와 기말고사시험이 걱정이다. 수업진도가 달라 같은 시험을 치르면 성적차이가 날 수 있다. 양 전 교수는 “평가를 점수화하지 않고 패스(PASS)란 것으로 평가했으면 좋을텐데 내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기초를 넘어서는 공부는 하나마나 하다는 견해다. 그는 “학생들을 수준별로 3그룹쯤으 나눠 가르쳐야 한다. 평가기준도 달리하고 이를 위한 교사도 2~3명이 더 필요하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방학 땐 대학생 자원봉사자들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이마저도 서울근교나 가능하다. 시골학교에선 대졸자를 찾는 것도 쉽잖다. 그가 받는 월급은 세금을 떼면 100만원 정도다. 교수일 때의 월급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임금이다.


그는 “체면을 생각하면 이런 곳에 못 온다. 봉사한다고 생각하면 더 낮은데서 일할 수 있다”며 “공기 좋은 곳에서 생활하니 더 젊어졌다는 말을 듣는다”고 시골근무의 장점을 설명했다.


주말엔 서울 집에서 지낸다. 서천과 서울을 오가는 기차에서 그는 어떻게 하면 쉽고 잘 가르칠까를 연구하고 메모한다.


대학에서 연구했을 때보다 더 고민한다는 양 전 교수. 제2의 전환기를 맞이한 그의 삶이 고향 서천, 모교 한산중학교에서 열정의 불꽃으로 화려하게 빛나길 주변의 사람들은 기대하고 있다.




이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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