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여론 방어 수단 논란···법조계 “검찰총장 인사제도 개선해야”
[아시아경제 정준영 기자]사면초가에 몰린 검찰이 수장이 직접 나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를 포함한 개혁에 나설 방침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안팎으로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개혁방안들이 과연 진정성이 있으며 제대로 추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상대 검찰총장은 22일 기자들과 만나 "대검 중수부 폐지, 상설특검제 수용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적 중립 논란과 더불어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오른 총장 직할부대 중수부를 폐지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 만큼 현재 검찰이 맞닥뜨리고 있는 상황은 검찰 내부에서 상당한 위기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위협'은 안팎에서 가해지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부장검사급 고참 검사가 수뢰비리로 구속된 지 불과 나흘만에 초임검사의 피의자 성추문까지 불거졌다. 서울고검 김광준 검사(51)는 다단계 사기꾼 조희팔 측근 및 유진그룹 등으로부터 9억 7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지난 19일 구속됐다. 역대 검사 금품수수 비리 가운데 단연 최고 규모다.
이 사건이 채 마무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서울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와 피의자 간 부적절한 관계 의혹이 터져나왔다. 이제 갓 로스쿨을 나와 검찰에 첫 발을 들인 30대의 예비 검사가 불기소 처분을 대가로 40대 기혼 여성 피의자와 검찰청사 안팎에서 성관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지며 충격을 안기고 있다.
중견과 초임 검사의 상식을 넘어서는 행각에 검찰 조직 내부에서는 검사 자질 논란이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불거지고 있다. 그랜저검사, 벤츠검사에 이어 3년 내리 검찰을 찾은 '11월의 재앙'은 올해 들어 정점에 달했다는 평이다. 한 총장의 중수부 폐지 등의 발언은 검찰 조직 내부에서도 이 같은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바깥에서는 대선을 앞두고 검찰을 겨누는 개혁 공세가 더욱 거세졌다. 대선후보들은 검찰개혁을 시대적 과제로 내세우고 경쟁적으로 정책을 내놓고 있다. 야권 후보들은 이구동성으로 중수부 폐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검찰 권한의 축소를 공약으로 내놨다. 법조계에선 수장인 검찰총장에 대한 인사제도 개선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같은 요구는 야권을 넘어서 특히 지난 몇 년간 검찰의 무리한 행보와 비리, 추문 등을 지켜본 국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어 검찰은 더욱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총장이 직접 나서 중수부 폐지 검토를 거론한 것은 일단 전향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총체적 궁지에 몰려서야 내놓은 자구안은 또 다른 시간 벌기 아니냐는 의심도 사고 있다. 결국 외부의 개혁 요구를 완화시키기 위한 '방어 전략'이 아니냐는 것이다.
중수부 폐지의 경우 이미 지난해 형사소송법 개정 과정에서 불거진 검ㆍ경 수사권 갈등 당시부터 이미 수사지휘와 맞바꿔 내어줄 수도 있다는 검찰 내부 목소리가 있었다. 정치인ㆍ법조인 등 권력층 비리를 겨눌 공수처 신설을 막기 위한 전술적 후퇴라는 지적도 있다.
동부지검 검사직무대리의 추문의 배경에도 검찰의 '순혈주의'를 흔드는 로스쿨 출신에 대한 검찰 내부의 견제 기류가 드러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작년에 문제가 된 변호사 출신 '벤츠 여검사' 사건의 경우처럼 '소수파' 검사에 대한 거부감이 일정 정도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한상대 총장은 구속기한 만료로 김광준 검사에 대한 사법처리 방침이 가닥잡힐 다음달 7일을 전후해 검찰 개혁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를 위해 검찰은 이달 초 검찰 내부 전산망에 익명게시판을 설치해 내부 여론을 수렴하는 한편 서울고검 산하 일선 지검장 회의, 전국 고검장 및 대검 검사장급 간부 회의를 연이어 소집했다.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이 어느 때보다 매서운 시점에서 검찰이 신뢰가능한 수준의 자정력을 선보일지 주목받고 있다.
정준영 기자 foxf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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