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설계와 관련된 외국서적을 읽다 보면 '자녀 리스크'라는 말을 자주 보게 된다. 자녀문제로 인해 노후에 큰 고생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결혼한 자녀가 갑자기 찾아와 신용불량자가 될 것 같다며 손을 벌리면 어떻게 하겠는가.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노부부가 노후생활 자금으로 약간의 목돈을 모아두었는데 사업에 실패한 아들이나 사위가 와서 손을 벌린다. 그러면 부모로서 모른 체 할 수 없어 평생 모아둔 돈을 내주고 노부부는 지하 쪽방에서 사는 것이다.
자녀교육과 결혼에 과다한 비용을 지출하고 궁핍한 노후생활을 하는 것도 자녀 리스크의 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가 55세 이상 퇴직자 500명을 대상으로 퇴직자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충분한 준비 없이 퇴직해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전체의 60%를 차지했다. 은퇴준비를 못한 이유로는 '자녀 교육비'라는 응답이 60%로 가장 많았다.
결혼비용도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중간 소득층 가정에서 지출하는 결혼비용은 아들이 8000만원, 딸인 경우에는 4000만원 정도 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런데 이 목돈을 자녀 결혼비용으로 지출할 경우, 부모들의 노후자금은 어떻게 마련하느냐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50~60대의 가구 수는 648만 가구에 이른다. 결혼비용 지출이 없다 하더라도 과다한 교육비 지출, 수명연장, 조기퇴직, 금리하락 등으로 인해 이 중 42%에 해당하는 271만 가구가 월 2인 생활비 94만원 이하로 생활하는, 이른바 은퇴빈곤층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에 앞에 언급한 수준의 결혼비용을 지출한다면, 전체의 17%에 해당하는 110만 가구가 추가로 은퇴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부모의 노후생활비를 자녀에게 의존하는 것도 어렵다. 이는 선진국 역시 마찬가지다. 젊은 세대가 불효자여서가 아니라 도와주고 싶어도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수명이 짧아 노부모 평균 부양기간은 5년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100세 시대에는 노부모 부양기간이 25∼30년으로 늘어나게 된다. 즉,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는 시대가 오면서 자녀가 부모를 부양하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녀 리스크를 어떻게 줄여야 할까. 우선, 자녀들에게는 어릴 때부터 경제교육을 통해 자립심을 키워주어야 한다. 그리고 교육비와 결혼비용을 아낀 돈으로 자신은 공적ㆍ사적 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인생 100세 시대에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최저 생활비를 연금으로 받을 수 있는 권리를 확보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부부가 함께 국민연금에 가입하는 것이 필수다.
직장인은 퇴직연금에도 가입할 것을 추천한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으로 부족한 부분은 연금저축과 연금보험과 같은 개인연금에 가입해 보완할 수 있다. 연금을 통한 노후준비를 못했을 경우, 현역시절에 모아둔 목돈으로 즉시연금에 가입해 매월 생활비를 받아쓰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모아둔 목돈이 없다면 살고 있는 집을 금융기관에 맡기고 생활비를 받아쓰다가 세상을 떠날 때 정산하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것이 최근 들어 이용자가 크게 늘고 있는 주택연금이다.
물론 자녀에게 집 한 채는 남겨줘야 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100세쯤 돼서 집을 물려줘봐야 이미 그 자녀도 70세가 돼 있기 때문에 상속에 큰 의미가 없다. 차라리 살아있을 때 부담을 주지 않는 편이 자녀에게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강창희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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