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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詩] 이건청의 '정직한 시인'중에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28초

그는 직업적인 단식가였다. 굶는 것이 특기였다. 서커스장에서도,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외진 구석이 그의 무대였다. 광대가 굶기 시작하면 서커스 단원이 그의 앞에 단식일수를 바꿔 달았다. 단식일 수가 늘고 살이 빠져나가면서 태연히 웃어 보이는 것이 그의 연기였다. 열광하는 관객을 꿈꾸며 그는 굶고 또 굶었다.(......)


이건청의 '정직한 시인'중에서



■ 이 시는 프란츠 카프카의 '굶는 광대'의 줄거리를 빌린 알레고리 시(詩)라고 할 수 있다. 굶는 연기를 하는 배우에게서 굶는 것은 연기인 동시에 삶이다. 연기를 연기처럼만 생각하는 배우는 연기가 지닌 내면으로 들어가기도 어렵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기도 어렵지 않겠는가. 날마다 '아,저詩'는 시를 내보내지만, 이 시대의 시인은 100% 굶는 직업이며 시는 딱 굶어죽기 좋은 생산품이다. 시인이 시를 써서는 제대로 먹고살 길이 없기에, 시는 쓰는 시늉만 하면서 한 눈을 팔아야 하고 가끔은 품도 팔아야 하는데, 문득 시의 신이 내려와 정직한 시인이 되라고 하니 양심이 꿈틀거린다. 그래서 굶는 연기를 제대로 하려는 저 배우처럼, 숟가락을 놓고 자살하듯 시를 쓰기 시작한다. 그 풍자가 맵고 아프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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