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청준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인데(......)아흔 살 어머니의 그의 어머니의 기억력에 대한 것이었는데, 요즈음 말로 하자면 알츠하이머에 대한 것이었는데, 지난 설날 고향으로 찾아뵈었더니 아들인 자신의 이름도 까맣게 잊은 채 손님 오셨구마 우리 집엔 빈방도 많으니께 편히 쉬었다 가시요 잉 하시더라는 것이었는데. 눈물이 나더라는 것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책을 나무라 하고 이불을 멍석이라 하는가 하면, 강아지를 송아지라고, 큰며느님더러는 아주머니 아주머니라고 부르시더라는 것이었는데(......)다시 살펴보니 이를테면 배가 고프다든지 춥다든지 졸립든지 목이 마르다든지 가렵다든지 뜨겁다든지 쓰다든지 그런 몸의 말들은 아주 정확하게 쓰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아, 몸이 필요로 하는 말들에 이르러서는 아직도 정확하게 갇혀 있으시더라는 것이었는데(......)
정진규의 '눈물'중에서
■ 눈,코,입,귀,혀,낯,목,배,등,손,발,팔 따위의 몸에 붙은 것들이 왜 대개 한 글자로 되어 있겠는가. 치매조차도 맨 마지막에야 걷어가는, 말의 원시상태이자 뿌리. 말의 감옥에서 벗어나 마침내 태아처럼 자유로워진 어머니. 그 어머니를 바라보는 자식의 눈물을 함께 울컥하는 기분으로 들여다본다.
빈섬 이상국 편집부장ㆍ시인 isom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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