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한국은 2010년처럼 세계 통화전쟁(currency war)의 중재자가 될 수 있을까. 3일 멕시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참석을 위해 출국하는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이 역할을 자임해 관심이 높다.
박 장관은 회기 중 차기 의장국인 러시아에 '선진국의 돈살포(양적완화)가 자국과 신흥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에 대해 연구해보자고 제안할 계획이다.
선진국의 돈살포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는 사안이다. 실질 금리가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진 선진국들은 돈을 찍어내 경기를 방어하는 극약처방을 쓰고 있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해서라도 죽어가는 경기를 살려보겠다는 안간힘이다.
문제는 이런 통화정책이 신흥국 경제를 교란한다는 점이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자국 통화를 국제결제수단으로 쓸 수 있는 나라가 돈을 풀면 국제 원자재 시장과 신흥국 금융시장에 돈이 몰린다. 원자재 값이 뛰고 통화가치가 올라 수출 중심의 신흥국 경제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행은 "선진국이 돈을 풀면 신흥국의 수출과 성장률이 단기간 늘어나다 3~5분기 후 하락하기 시작한다"는 분석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도쿄 국제통화기금(IMF) 연차총회 기간에도 신흥국들은 선진국의 통화정책에 우려를 표명했다. 인도와 브라질 등 브릭스(BRICS) 국가들은 "돈살포만으론 (경기둔화)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서 선진국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한국도 선진국의 돈살포로 직격탄을 맞은 나라 중 하나다. 연고점보다 7% 이상 급락한 원달러 환율은 수출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박 장관은 하지만 이번 회의에서 신흥국의 입장만을 대변하진 않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재정여력이 제한돼있는 선진국이 택할 수 있는 정책이 한정돼 있는 것도 사실"이라면서 "선진국 경제가 침체돼 있는 것이 세계 경제에 도움이 되는지, 돈살포 정책의 파급 효과가 얼마나 되며 정말 선진국의 일자리가 늘고 경기가 살아나는 효과가 있었는지 심도있게 논의해보자고 설득하겠다"고 강조했다.
박 장관의 시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재정부는 "선진국과 신흥국의 가교 역할로 발언권을 강화하면서 실리도 챙길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만 시장의 전망은 다르다. 한 시장 전문가는 "G2(미국과 중국)가 맞붙었던 2010년과 모든 나라가 각자도생 중인 2012년의 상황은 다르다"면서 "선진국의 재정여력이 남아있던 그 때는 투자와 무역에 현 수준 이상의 장벽을 치지 말자는 스탠드 스틸 원칙이 통했을지 모르지만 각 국이 정권교체를 앞둔 지금은 중재 시도가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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