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대중화를 말하다 | 정연교 경희대 철학과 교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관심과 참여도 자연스럽게 많아졌다. 인문학은 좁은 의미에서 문학, 역사, 철학 등의 학문을 지칭하지만 넓은 의미에선 자연과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을 관찰하고 연구하며 의미를 도출하는 것을 말한다. 정연교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위원회 위원장은 인문학은 정보화 사회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소비하기 위해서 필요한 학문이라고 강조했다.
“치유의 인문학이란 나하고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과 문화를 이해함으로써 현대인들이 저마다 마음 속 분노나 응어리진 것들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봅니다.”
올해 한국연구재단 인문학대중화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연교 경희대학교 철학과 교수는 인문학의 치유적인 측면을 이같이 설명했다. 정 교수는 인문학에 대해 “좁은 의미에선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지만 넓은 의미에선 자연과학 이외의 것”이라고 정의했다.
현대인 마음 속 응어리 풀어주는 인문학
일상에서 이 두 가지 용어가 혼재돼 사용되고 있지만 주로 인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설명할 땐 넓은 의미로서 쓰인다. 정 교수는 인문학의 사회적 기능이나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대해 ‘우문(愚問)’이라고 단서를 붙이면서도 “사람이 포함된 사회현상은 과학적 탐구가 거의 불가능하고 개량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에,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는 사회에선 제대로 된 정보를 소비하려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역사를 보는 눈이 없이 어떻게 독도문제니 5공화국에 대해서 판단할 수 있겠느냐”며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현재 대중들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위기’라는 말을 사용할 정도는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대중의 관심은 전혀 줄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근 출판가에서 부는 ‘인문학 열풍’이나 ‘낭독의 발견’과 같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한 TV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현상은 인문학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과 열의가 뜨겁다는 증거다. 오히려 인문학의 위기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수요가 늘어나는데 비해 ‘문사철’을 전공하는 학자들의 숫자가 상대적으로 줄거나 혹은 늘어나지 않았다는 지엽적인 문제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이 주는 교훈과 의미 돌아보는 ‘인문주간’
그런 의미에서 ‘인문주간’은 인문학의 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전략에서 나온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인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교훈과 의미를 돌아보고 즐기는 일종의 축제에 더 가깝다.
“이를 테면 ‘소방의 날’과 같은 겁니다. 그동안 불을 끄고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애를 쓴 분들을 생각하고 화재의 위험에 대한 주위를 환기할 수 있는 자리로서 ‘소방의 날’이란 기념일이 있는 것처럼 인문주간에 예술공연과 시낭송 등에 참여하고 문화계 인사들과 만나고 대화를 나누면서 인문학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주위를 환기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보는 것입니다.”
이런 인문주간 행사가 매년 진행되고 대중들의 관심이 커지고 있지만 여전히 인문학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존재한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정 교수는 “인문학은 상식적인 것 이상의 얘기들이 없기 때문”이라며 “너무 진부하거나 아니면 너무 작고 어려운 문제여서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다행히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나 도올 김용옥 교수 등 인문강좌를 재미있게 하는 분들이 있어서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인문학 정보를 즐기고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국연구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인문학 대중화 사업은 크게 석학인문강좌,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강좌, 인문주간 등 3가지로 구분된다.
“석학인문강좌는 인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강좌입니다. 클래식 공연을 CD로만 듣다가 직접 보게 되면 받게 되는 감동의 크기가 다르듯 평소 대학 강좌가 아니면 만나보기 어려운 인문학 고수들을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가 높습니다. 소외계층을 위한 인문강좌는 저소득층이나 청소년 등 인문학을 쉽게 접할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운영됩니다. 마지막으로 인문주간은 이벤트이지만 인문학이 우리 삶에 주는 의미를 되돌아보고 즐길 수 있는 행사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정 교수는 인문학의 미래를 밝게 전망했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서면서 사람들의 관심이 미술, 역사, 여행 등에 집중되면서 인문학의 수요는 앞으로 갈수록 더 높아질 것이고 자연스럽게 인문학과 관련된 글을 쓰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문학대중화사업이란?
인문학대중화사업은 다양한 인문강좌 및 행사를 지원해 국민들이 일상 속에서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2007년도부터 실시됐다. 이 사업을 기획하고 주관하고 있는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연구재단은 올해 이 사업에 총 29억4000만원을 들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엔 전국 60여개 기관에서 무료 시민인문강좌가 운영됐으며 공연·전시 등 일상에서 인문학을 접할 수 있는 ‘인문주간’이 진행됐다.
특히 무료 시민인문강좌는 일반인뿐만 아니라 노숙인, 새터민, 다문화가정, 군장병 등 인문학 접근이 어려운 계층으로 진행돼 인문학 대중화에 많은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올해는 주5일제 전면 도입과 학교 폭력 문제에 따른 청소년 인성교육 강화 여론 증대에 따라 초중고 대상 인문강좌를 확대했다.
또한 대학과 박물관, 도서관 등 대학 외부의 각종 연구·사회·문화기관과 교육청을 포함한 지방자치단체 등과의 연계도 더욱 강화했다. 이들 기관이나 지역기관과 협력해 지원하는 대규모 과제일 경우 인문강좌, 체험, 축제 등 지역내 인문자원이 통합적으로 연계돼 도시 전체가 인문학의 향연에 스며들도록 했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