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세계로 뛴다]하나은행
현지화·철저한 개인고객 공략
[베이징(중국)=아시아경제 최일권 기자] 자금성을 비롯한 도심을 감싸는 제2 순환도로 안에 자리잡은 베이징 진룽제(金融街). 금싸라기 땅으로 불리는 이곳에는 공상은행, 인민은행, 교통은행 등 자산 규모 세계 10위권을 형성하고 있는 중국 거대 은행이 몰려 있다.
중국 현지에서만 150여 년 역사를 지닌 씨티은행, 현지 보험사 1,2위를 다투는 평안인수보험 등 전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굵직한 금융기관들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과연 중국의 금융중심지 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이곳에 형성된 마천루를 올려다 보는 것만으로도 중국 금융업의 고도성장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진룽제의 어마어마한 경쟁자들 틈바구니 속에 우리나라 토종은행인 하나은행의 중국법인이 자리잡고 있다. 중국서 본격적인 사업을 벌인지 겨우 5년. 거대은행에 비해 성과는 미미하지만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외국계 은행 한계를 이겨내면서 한단계씩 전진하고 있다.
지난달 초 기자가 방문한 본사 사무실에선 갓 출시된 VVIP용 직불카드와 관련한 영업회의가 한창이었다. 하나은행은 300만위안 이상의 은행 잔고를 가진 고객을 대상으로 한 VVIP용 직불카드를 지난달 11일 선보였다. 이 카드는 출시 보름 만에 84장이 발급됐다. 카드 한가운데는 조그마한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다. 중국인들에게는 다른 카드와 차별화되는 디자인 요소다. 80여 장의 발급 규모가 미미할 수도 있지만 모두 거액의 자산가에게 발급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단기간 내 상당한 성과라는 평가다.
이날 회의에서는 우리나라와 중국을 오가는 거액 자산가를 어떻게 끌어들일 것인가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계은행에 우리 돈 수억원을 선뜻 맡기기란 쉽지 않은 만큼 브랜드를 알리고 한국 마케팅을 강화하기로 했다. 가령 VVIP 카드를 발급받은 고객에 대해서는 한국 방문시 다양한 할인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하나은행의 중국 공략 방식은 국내 다른 은행과 다르다. 중국시장에서 단기간에 안착하기 위해 현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을 주요 타깃으로 삼는 게 일반적인데, 하나은행은 철저히 중국인 개인고객 모집에 역점을 뒀다. 중국 은행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윤석희 하나은행 중국법인 부행장은 매주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상품 내역이 담긴 홍보물을 들고 집을 나선다. 휴일이라 은행창구는 열리지 않지만 고객을 한명이라도 더 확보하기 위해 베이징 인근 골프장을 비롯해 고객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간다.
중국 현지에서 만난 윤 부행장은 "얼마 전에도 고객을 골프장에서 만났 는데 100만위안을 우리 은행에 예금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면서 "상당히 공을 들인 결과라 더욱 기쁘다"고 빙긋 웃어 보였다.
하나은행의 중국고객 확보는 소위 '틈새 공략'이다. 현지 틈새시장은 바로 은행잔고 300만위안(우리돈 5억2000만원) 이상의 자산가와 유학생이다. 개인고객 확대라는 전략과 들어맞는데다 예금 유치율도 높일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분석이다.
윤 부행장은 "한중간 가교 역할이 우리의 틈새 시장"이라면서 "고액의 자산가가 한국을 방문할 경우 할인혜택을 주는 식"이라고 말했다.
잔고가 높은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은 중국의 은행감독 방침과도 관련이 있다. 현지 금융감독당국은 외국계 은행에 대해 예대율 75%를 넘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즉 대출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이보다 많은 예금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미다. 대출 이자수익에 의존하는 하나은행으로서는 중국 개인 고객 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던 것이다.
중국에 있는 한국 유학생도 타깃 고객층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한 유학생 직불카드를 지난 8월부터 발급하기 시작했는데 2개월 동안 500명 이상을 확보했다.
이 같은 노력에 따라 법인 설립 5년 만에 하나은행은 중국에서 3만5000여 명의 개인 고객을 확보했다. 이 가운데 중국인 비중은 67%에 달한다 . '하나은행'을 잘 알지 못하는 현지인을 대상으로 거둔 실적이라 더욱 의미가 있다.
윤 부행장은 "기업 부문에서도 한국고객이 720여 개 인데 반해 중국기업이 1600여 개에 달한다"고 말했다.
고객과 돈이 몰리면서 예대율 역시 빠르게 낮아졌다. 2007년 법인 출범 당시 예대율이 300%에 달했지만 예금 확대를 통해 지난 9월말에는 평잔기준 68.5%까지 낮췄다. 예금은 2007년 말 4억8000만위안에서 지난 9월 143억1000만위안까지 늘었다. 연말까지 170억 위안을 달성할 방침이다.
반면 대출은 66억4000만 위안에서 94억7000만 위안으로 늘어나는데 그쳤다. 대출은 억누르는 대신 예금 확보에 주력한 결과다.
철저한 중국은행을 표방한 만큼 직원 역시 중국인력 비중이 높다. 전체 440명 직원 가운데 한국인은 29명에 불과하다. 우리은행이 52명, 신한은행 44명을 감안하면 낮은 수준이다. '중국인력 채용을 확대하라'는 현지 감독당국의 정책과도 부합한다는 게 은행 측의 설명이다.
하나은행 중국법인은 올해 남은 기간 동안 예금 증대에 올인하기로 했다. 예금이 늘어야 대출 여력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현재 16곳인 중국내 영업점포를 내년 초까지 19곳으로 늘릴 방침이다. 난징과 선양, 칭다오 등이 추가 대상이다.
특히 일찌감치 진출한 중국 동북3성은 앞으로 하나은행의 중국 사업에 핵심이 될 전망이다. 하나은행은 우리나라 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중국 동북3성에 점포를 세운 바 있다.
하나은행 관계자는 "한중간 가교 역할을 위한 의지의 표현"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작업도 병행할 방침이다. 동북지역 창춘공항에 대형간판을 세운데 이어 VIP 마케팅을 위해 노블레스 등 고급잡지에도 브랜드 알리기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이외에 베이징, 칭다오, 선양, 광저우 등지에서는 버스 광고를 통해 인지도를 높일 계획이다.
최일권 기자 ig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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