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병희 기자]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뉴스코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이 결코 감추지 못 하는 자신의 야욕을 다시 한번 드러냈다.
20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머독은 미 최대 신문 중 하나인 로스앤젤레스(LA)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인수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10년 자신이 소유한 영국 타블로이드지 뉴스오브더월드의 전화 해킹 사건 이후 머독은 표리부동한 모습을 보여왔다. 겉으로는 자신이 소유한 신문과 방송의 이사직에서 물러나는 등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의 미디어 제국 확장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LA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인수 시도도 그 일환으로 볼 수 있다.
LA 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은 모두 지난 2008년 파산보호를 신청한 트리뷴 그룹 소속 신문사다. 미국에서 23개 TV 방송국과 볼티모어 선, 올랜도 센테니얼, 선 센테니얼, 하트포트 커런트 등 지역 일간지를 소유하고 있는 트리뷴은 올해 말께 파산보호 조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머독의 둘째 아들인 제임스 머독 등 뉴스코프 경영진은 최근 잇달아 LA를 방문해 헤지펀드 오크트리 캐피털 매니지먼트 등 트리뷴 그룹의 채권단과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월가 관계자들은 뉴스코프 분사 후 머독의 LA타임스 인수 시도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머독은 현재 뉴스코프를 출판 사업과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로 분리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신문·책 출판과 교육 사업에서 TV 사업부만 따로 떼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뉴스코프의 영화·TV 사업부는 20세기 폭스 영화사와 폭스 브로드캐스트 네트워크, 폭스 뉴스 채널 등을 거느리고 있다. 반면 월스트리트저널, 타임스, 하퍼콜린스 출판 등은 출판 사업부에 속해 있다.
머독은 애초 뉴스코프 분사 문제를 강력히 반대했으나 뉴스오브월드의 전화 도청 사건 후 거대 미디어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씻어내기 위해 분사 추진 쪽으로 돌아섰다. LA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인수 시도는 계열 분리 후 광고 매출이 점점 줄면서 위상이 위축되고 있는 신문 사업부의 지배권을 확대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 신문협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신문 광고 매출은 거의 50% 가까이 줄어 240억달러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머독은 오랫동안 LA 타임스에 눈독을 들여왔다.
하지만 머독의 LA타임스와 시카고 트리뷴 인수는 규제당국과 마찰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보인다. 미국의 방송통신 정책을 주관하는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같은 지역에서 방송과 신문을 동시에 소유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머독은 이미 LA와 시카고 지역에 각각 2개씩의 폭스 방송국을 소유하고 있다.
다만 FCC는 과거 이에 대한 규정 폐지를 검토했으며 실제 예외를 적용한 사례도 있다. 예외가 적용된 사례가 바로 트리뷴 그룹이 KTLA-TV 채널5 방송과 LA타임스 신문을 동시에 소유한 것이다. 머독은 이 사례를 들어 FCC 합병 승인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FCC 입장에서도 머독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점을 들어 합병을 거부할 개연성이 있다.
또 LA 타임스를 노리는 이들은 머독 뿐만이 아니다. 머독은 오스틴 뷰트너 LA 전 시장과 캘리포니아주 일간인 오렌지 카운티 레지스터의 소유주인 애론 쿠시너, 샌디에이고 지역 부동산 재벌인 덕 맨체스터 등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2010년 뉴스오브월드의 전화해킹 사건은 머독의 야심을 꺾지 못 했다.
당시 많은 비난을 받았던 머독 일가는 일선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다. 머독 자신 뿐만 아니라 영국 사업을 주도해왔던 차남 제임스 머독도 뉴스코프의 영국 자회사인 뉴스인터내셔널 회장직과 영국 최대 유로 위성방송사 B스카이B의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전화 해킹 사건을 일으킨 문제의 타블로이드 주간지 월드오브뉴스도 지난해 폐간했다. 이에 따라 머독 일가가 영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았다.
하지만 머독은 오히려 지난 2월 영국에서 최대 부수를 자랑하는 일간지 ‘선’의 일요판을 발행했다. 사실상 폐간한 뉴스오브더월드를 이름만 선으로 바꿔 다시 발행한 셈이었다.
영국에서 한발 물러난 제임스 머독은 미국에서 역할을 확대했다. 머독이 제임스에게 전국 방속인 폭스 네트워크와 케이블채널 FX, 내셔널 지오그래팩을 소유한 폭스 네트워크 그룹(FNG)의 경영 책임을 맡긴 것이다.
지난 16일 주주총회에서 일부 주주들이 시도했던 머독 일가에 대한 불신임 시도도 좌절됐다. 주주 투표 결과 머독에 대한 불신임 표결 비율은 5%에 불과했다. 머독 일가의 뉴스코프 지분율은 12%에 불과하지만 머독이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의결권 지분은 40%에 이른다.
갖은 비난과 말썽에도 불구하고 뉴스코프의 주가는 지난 1년간 40% 가량 올랐다.
뉴스코프가 출판 사업과 엔터테인먼트의 2개 사업부로 분리되더라도 머독 일가는 2개 사업부에 대한 핵심 지배권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병희 기자 nut@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