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계절입니다. 또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이 부러워집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벨상 수상 시점도 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과학 연구분야에서 우리나라의 과학자가 연구흐름을 이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이크로 RNA, 그래핀, 뇌신경공학과 같은 분야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앞서고 있는 분야 가운데 '초고체' 관련 연구 역시 빼놓을 수 없습니다. 현재 KAIST에 재직 중인 김은성 교수가 박사과정 연구를 하면서 처음 관찰한 초고체 상태의 물질이 고체-액체-기체 상태 이외에 아주 특이한 또 다른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고체 현상이 확증되면 물리학 교과서를 바꿔 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김 교수의 노벨상 수상이 단지 시간문제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김 교수의 지도교수이며 동시에 공동연구자였던 모제스 챈 교수가 초고체 현상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실험상의 오류였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폭탄선언으로 관련 학계는 아주 흥미로운 논쟁 속으로 빨려 들어 가고 있습니다. 초고체현상의 발견자 스스로 이를 부정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함으로써, 그동안 초고체 관련 연구에 비판적이거나 회의적이던 학자들의 주장은 큰 힘을 받게 된 것이지요. 반면 김 교수는 여러 가지 다른 실험을 통해 초고체의 존재를 분명히 증명할 수 있다고 반박하고 있습니다.
저는 과학계의 이런 논쟁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특히 챈 교수를 주목합니다. 발표된 지 이미 십여년이나 지난, 그리고 자신을 학계의 스타로 도약하게 한 연구결과가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일은 (그것이 결론적으로 옳든 그르든) '합리적인' 사고와 용기가 필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일단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 결정을 바꾸지 않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건을 사고 나면 잘 샀다고 스스로 최면을 건다거나, 판단이 어려우면 무조건 현상유지 쪽으로 기우는 것과 같은 경험은 모두에게 있을 겁니다. 최고경영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최고경영자가 자신의 잘못된 의사결정을 빨리 수정하지 못해서 기업이 파멸에 이른 사례도 적지 않지요.
올해 초 파산신청을 한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으로 개발한 회사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코닥의 경영진은 디지털 카메라보다는 필름카메라에 대한 굳건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고, 결국 다른 경쟁사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사업영역을 옮기는 동안에도 필름사업에 집착하고 말았습니다.
최근 위기에 처한 웅진그룹의 사례도 비슷합니다. 무리하게 인수한 기업을 중도에서 포기하지 못하고 언젠가 좋아질 거라는 기대를 계속했고, 결국 계열사의 현금동원능력을 모두 소진하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잘못된 의사결정을 막기 위해 학자들은 과학적인 '생각의 도구'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더불어 자신의 의견에 거의 무조건적으로 도전하는 악마의 대변인을 가까이 두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면에서 경영자들은 과학자들에 비해 불리합니다. 경영 의사결정 가운데 일부는 분명히 감각적이어서 전적으로 합리적인 분석도구를 적용할 수 없고, 또 과학자들처럼 치열하게 갑론을박할 상대를 가까운 곳에서 찾기가 어려우니 말입니다.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
만약 지금 자신이 경험과 감각에 기대어 비슷비슷한 의사결정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면, 주위를 돌아보니 자신의 의사결정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한다면, 걱정하십시오. 어쩌면 오랫동안 잘못된 판단을 해 온건지도 모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