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우리금융지주가 그제 하우스푸어 대책으로 내놓은 '신탁 후 임대(트러스트 앤드 리스백)' 제도에 대해 권혁세 금융감독원장이 어제 '은행권 공동'으로 '투자자도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아울러 금융당국에서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방침임을 밝혔다. 금융감독 당국 수장으로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우리금융이 단독으로 이 제도를 도입해 운영하겠다고 발표하자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빚어진 터였다.
우리금융이 애초에 거론하던 '매각 후 임대(세일 앤드 리스백)' 대신 신탁 후 임대를 새로 착상해 내놓은 것은 창의적이었다. 은행이 특수목적법인(SPC)을 신설하고 이를 통해 고객에게 매각 후 임대를 이용하게 하는 것보다 신탁 자회사를 통해 신탁 후 임대를 시행하는 것이 여러 모로 편리하고 비용도 덜 든다. 은행은 신탁된 주택에 대해 1순위 수익권을 갖게 되고, 고객은 주택에 대한 소유권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금융이 홀로 이 제도를 도입하려다 보니 대상범위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자사 주택담보대출 고객 중 1주택 소유 실거주자이며 이자만 연체한 경우 등으로 조건이 제한되니,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고객이 몇 백명 정도에 불과하게 됐다. 주택 소유자이나 대출 원리금 상환 때문에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하우스푸어는 150만가구 이상, 그중 깡통주택 소유자는 20만가구 이상으로 추정되는 것에 비하면 조족지혈에도 못 미친다. 게다가 3~5년의 신탁기간에만 이자 수준의 임대료를 내면서 기존 주택에서 거주할 수 있게 해준다. 신탁기간 종료 시 주택가격이 담보대출 원금을 웃도는 경우는 문제가 없겠으나 밑도는 경우에 대한 구제대책은 없다.
이런 점에서 신탁 후 임대는 권 원장의 말대로 은행권 공동의 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이 옳다. 그래야 리스크가 분산돼 훨씬 더 많은 하우스푸어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제도가 마련될 수 있다. 신탁된 주택에서 임대료 수익이 발생하므로 투자자를 유치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은행들이 뜻과 의지만 모은다면 전국은행연합회 등 은행권을 대표하는 조직을 통해 은행과 하우스푸어인 고객 양쪽에 두루 이로운 신탁 후 임대 제도의 모범답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