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의자. 최근 미국 SNS에서는 빈 의자 사진이 부쩍 눈에 띈다. 다양한 배경의 의자 사진이 올라오고 밑에는 ‘오바마와 함께 점심을’, ‘오바마와 인터뷰 중’, ‘오바마와 맥주한 잔’ 등의 글이 달린다. 사람들은 의자에 오바마가 앉아 있다고 가정한다. 대체 왜일까.
8월 초, 미 공화당 대선후보 미트 롬니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에게 전화를 건다. 다가오는 전당대회 때 연설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통상 연사는 리허설을 거치지만 이스트우드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특별손님이니까. 이스트우드는 연설 전 “의자를 준비해 달라”고 요청한다. 롬니 측은 몰랐다. 그 의자에 누가 앉으려, 혹은 누굴 앉히려 했는지.
8월 30일 전당대회 당일. 이스트우드는 빈 의자에 오바마를 앉힌다. 그리고 독백을 시작한다. 빈 의자를 향해 쏟아낸 그의 연설은 오바마 정부가 투명인간처럼 존재감 없다는 걸 비아냥거리기 위함이었다. 가열한 그의 독백은 12분 동안 이어진다.
이날 이후, 이스트우드의 오바마를 향한 ‘조롱’을 패러디한 사진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일컫는 신조어가 ‘이스트우딩’이다. ‘이스트우딩’은 독백이다. 의자와 화자, 둘에게만 초점을 맞췄을 땐 틀림없이 그렇다.
허나 카메라 줌을 조금만 밀어보면 얘기는 달라진다. 수 없이 많은 청중들이 눈과 귀를 열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스트우드’와 ‘빈 의자 위 오바마’는 ‘일침 가하는 공화당’과 ‘하릴없이 당하는 민주당’의 모습이다. 그리고 신조어까지 만들며 회자되는 이스트우드의 행동. 자칫 공화당 쪽으로 무게가 쏠린 걸까.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북한’은 관심 대상이다. 민주당 정강정책에는 북한이 여섯 번 언급됐고 공화당에는 세 번 나왔다. 하지만 공화당이 좀 더 강경한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스트우드 파장은 주목할 만하다. 이를 테면 북핵을 둘러싸고 민주당은 “비핵화를 입증할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와 미국으로부터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밝힌 한편, 공화당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폐기 원칙을 준수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핵 해결 관련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양 당이 정반대의 시각으로 맞서고 있다. 민주당은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 데 중국은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한 반면 공화당은 “중국이 통화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대통령은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스트우딩’을 통해 공화당과 민주당 그리고 대북정책을 떠올려 보는 건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공화당 측조차 이스트우드의 이 같은 ‘돌발 행동’에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롬니 마저 미간을 찌푸렸다. 한바탕 이슈가 되긴 했지만 그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 까지 외면당하고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놀림감’이 됐다.
그가 단상에서 한 건 어쩌면 ‘완전한 독백’인지도 모른다. 모두가 그의 얘길 들었지만 이내 등을 돌렸으니까. 이스트우드가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말은 결국, 굉장히 단순하게 “할리우드 배우 중에서도 보수파가 있다”는 거였는지도.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