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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폭력의 맨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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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상미 기자]'내일까지 이자포함해서 3만원이다', '밟아죽이기 전에 일어나' 등 거친 욕설과 난폭한 몸짓이 무대를 가득 채운다. 학생들의 눈으로 바라본 가해학생의 모습은 어른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섬뜩하다.


그런데 연극은 가해학생들의 끔찍한 폭력의 현장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친구와 후배들을 무섭게 괴롭히던 아이들은 주저앉아 '대학이나 갈 수 있겠냐' 며 한숨짓고 '이렇게 사는 건 사는 게 아니야'라며 자조한다.

아이들의 눈으로 바라본 '학교폭력의 맨 얼굴' 지난 6일 중구청 대강당에서 열린 '학교폭력 사례 역할극 발표회'에서 금호여중 학생들이 연기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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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들이 직접 극본을 쓰고 감독 및 연출까지 맡은 학교폭력 사례 역할극 발표회가 6일 중구구민회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금호여중, 대경중, 장원중, 창덕여중, 한양중 5개팀 학생들이 무대에 오를 때마다 강당에 모인 500여명의 친구들과 생활 지도 담당교사들은 뜨거운 박수와 함께 힘찬 응원을 보냈다.


금호여중에서 준비한 '중딩만의 세계'작품은 학교에서 매일 금품 갈취와 구타를 당하는 은영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연극의 초반부에는 은영이가 학교폭력을 당하면서 성적이 떨어지고, 부모에게 반항하는 등 갈등을 겪는 모습을 보여 준다.

가해학생들로부터 돈을 뜯기고, 맞는 장면은 실제 눈앞에서 학교폭력의 현장을 목격하는 것처럼 생생하다. "파티에 참가해야 되는데 참가비가 부족하다"며 알아서 성의를 표시해주길 바란다는 일진 언니들은 은영이와 친구들에게 "돈이 없으면 신발이라도 벗으라"고 협박과 폭행을 일삼는다. 이날 발표회에 참석한 설선국 장원중 교사는 "아이들의 시선에서 자기들만의 언어로 만들어낸 연극이기 때문에 사실상 저런 폭력상황이 실제로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연극은 가해학생들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어째서 가해학생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아가며 반전을 꾀한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탓하며 꿈꾸길 포기하고 삐뚤어져버린 아이들이 어느 순간 '나도 더 이상은 이렇게 못살겠다'며 변화를 선언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 무대를 준비하기 위해 7월부터 꼬박 두 달간 모여서 함께 연습했다. 정미숙 금호여중 교사는 "학교특별활동시간을 맡고 있는 연극지도 선생님이 아이들을 도와줬다"며 "방학 때도 일요일까지 나와서 열심히 연습해준 아이들의 열정이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무대에서 가해학생을 연기한 성애린(15) 학생은 "연극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다"면서 "학교폭력으로 인해 죽음까지 가는 일은 이제 더 이상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회에서 친구들의 무대를 본 강소희 학생은 "예전에도 학교에서 학교폭력예방 관련 자료들을 보여주긴 했지만, 친구들이 직접 무대에 나와서 보여주는 게 훨씬 재밌고 쉽게 와 닿는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인성교육과 학교폭력 예방이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할 때 큰 효과가 있다는 판단 아래, 앞으로 학생 자치활동 지원사업을 지속적으로 펼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상미 기자 ysm1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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