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민규 기자] 코트라의 탄생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기존에 무역협회와 상공회의소 등 무역 관련 기구들이 활동하고 있던 상황에서 굳이 또 새로운 공사를 세울 필요가 있냐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코트라의 설립에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상공담당 최고위원으로 있던 박태준 고 포스코 명예회장(사진)의 의지가 크게 작용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1962년 4월11일 열린 국가재건최고회의 상임위원회 회의에서 당시 정래혁 상공부 장관은 "상공회의소는 대·중·소 기업체의 육성과 업계의 여론을 정부에 반영케 하는 국내적인 기구이며, 무역협회는 수출입을 통한 해외활동이 실현되고 있으나 수출을 위한 집중적 기구로서는 돼 있지 않다"며 "일본의 경우에도 제트로(일본무역진흥기구)의 꾸준한 노력의 결과로서 이뤄진 것이며 우리 노력을 총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코트라 설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러나 당시 김윤근 위원은 "20억원이나 들여 공사를 만들어 그만한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차라리 그 돈을 민간에 융자해 주는 것이 효과적이지 않냐"고 지적했다. 그러자 박태준 상공담당 최고위원은 이 같은 반대 의견에 대해 "보상금 제도가 현재 얼마나 도움을 주고 있는가 보면 알 수 있듯이 이 돈을 민간에 융자하는 것은 효과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코트라 설립의 당위성에 힘을 실어줬다.
1961년 한국은행에서 상공부로 파견을 나가 근무 중이던 장무환 코트라 OB는 일본무역진흥기구(제트로)와 영국수출무역연구기관(베트로)를 본뜬 무역진흥공사 설립을 제안했다. 당시 정래혁 상공부 장관 등 상부에서는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장 씨는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서 박태준 상공위원은 코트라 설립법안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다"고 회상했다.
박민규 기자 yushin@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