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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격상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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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일의 경제읽기

신용등급 격상 “개나 줘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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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상승 그게 뭐야? 개나 줘버리라고 해.” 며칠 전 여의도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함께 기울인 중견기업 부장이 내뱉은 말이다. 김 부장은 “정부 장관이라는 자가 ‘한국신기록이다’ ‘국격 상승이다’는 소리를 지껄일 정도로 지금 나라 경제가 좋은 거야? 홍 팀장 어떻게 생각해?” 당황스러웠다. 분명 무디스가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을 A1에서 Aa3로 한 단계 올리면서 중국·일본 등과 동일하게 평가한 것은 호재로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국가 신용등급 상승은 한국 경제의 펀더멘탈이 견고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국내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할 때 가산금리가 떨어져 이자비용을 줄일 수 있는 직접적인 효과를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가 브랜드 가치가 높아지면서 기업 제품이나 서비스 이미지가 올라가는 간접적인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호재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김 부장의 말에도 공감이 간다. 작금의 우리 경제는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다. 우호적인 환경을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다는 얘기다. 실제로 우리 경제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과 같은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육박하고 있고 연체율은 급등하고 있다.


수년에 걸친 주택시장 침체로 인해 하우스푸어가 급증하면서 은행 이자 부담에 따라 중산층이 지갑을 닫아버려 내수는 불황의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게다가 유럽의 재정위기 여파로 우리나라 주요 수출국인 중국과 미국 등의 성장 부진이 부진해져 수출까지 급감하고 있다.

한국 경제 성장률이 2%대로 떨어지면서 저성장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국내외 경제단체들의 분석도 심심찮게 들리고 있다. 신용등급 상승은 매우 고무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경제 곳곳에 수많은 지뢰가 깔려있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는 정부가 국가신용등급 상승이라는 상징적인 호재에 축배를 드는 모양새는 볼썽사납기 그지없다. 소주병이 한병 두병 비워지고 시계추가 12시를 넘어서면서 취기와 함께 김 부장의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정부에 대한 비판 강도 역시 한층 높아졌다.


“지금 기업이나 국민들은 죽을 맛인데 국제 신용등급이 올라갔다고 자화자찬할 정도로 좋아하는 꼬락서니 좀 봐. 제정신이야? 소문을 들으니 정부 담당자들은 그날 축배를 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고 하더군”


김 부장은 대한민국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중산층이다. 그가 이처럼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는 죽어라고 열심히 살아도 나아지지 않는 삶 때문이기도 하다. 기업과 소비자의 경제상황에 대한 심리를 종합적으로 나타내는 경제심리지수(ESI)가 3년 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것은 국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불황의 골이 얼마나 깊이 패어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잿빛으로 물들어 있는 경제전망으로 주눅이 들어 있다가 무디스의 신용등급 상승이라는 호재가 더 달콤하게 들렸을 수 있다. 그렇다고 국가 신용등급 상승이 우리 경제의 모든 것을 반영하지는 않는다. 신용등급 상승이 마치 위기에 처한 우리 경제에 면죄부를 준 것처럼 인식해서도, 자신들의 치적인 냥 난리법석을 떨어서도 안 된다.


다소 흥분했다면 정신을 차리고 위기 대응에 매진해야 한다. 우리 경제는 태풍이 몰아치는 망망대해에 서 있는 작은 돛단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이코노믹 리뷰 홍성일 기자 h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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