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회 런던 하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은 204개 출전국 가운데 판정 문제와 관련한 피해를 유독 많이 봤다. 대회 초반부터 박태환(수영), 조준호(유도), 신아람(펜싱) 등이 줄줄이 판정 문제로 손해를 보거나 경기력에 일정 수준 영향을 받았다. 판정 문제는 아니지만, 대회 막바지 박종우(축구)는 ‘독도 세리머니’로 시상대에 오르지 못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그분들(IOC 위원 지칭)은 그곳(런던)에서 도대체 뭘 하고 계셨냐”는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억울하기도 하고 마음이 급하기도 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그분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엉뚱한 과녁에 쏜 것이다. 올림픽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주관해 치르지만 종목별 경기는 국제연맹(IF)이 독자적으로 운용한다. 박태환의 부정 출발 문제는 국제수영연맹(FINA), 조준호의 판정 번복 문제는 국제유도연맹(IJF), 신아람의 계시 문제는 국제펜싱연맹(FIE)의 소관이다. 박종우의 정치적 행위는 국제축구연맹(FIFA)이 판단한다. IOC가 박종우 문제에 대해 FIFA의 보고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IOC와 IOC 위원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꼭 알아야 할 몇 가지 사항이 있다. 1894년 6월 23일 파리에서 열린 국제 스포츠 회의는 근대 올림픽의 창시와 이를 관장하는 조직인 IOC의 결성, 그리고 제1회 대회를 1896년 고대 올림픽의 나라인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기로 결정했다. 이때부터 IOC는 올림픽에 정치가 끼어들지 않도록 무척 신경을 썼다.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인 피에르 쿠베르탱은 정치가나 정치 조직을 매우 싫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부터 올림픽을 각국 정부로부터 독립된 것으로 만들어 모든 정치적 간섭으로부터 지킬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신도 프랑스의 귀족(남작)이거니와 IOC를 조직할 때 작위를 지닌 귀족들을 위원으로 속속 받아들였다. 위원들의 지위가 두드러지면 두드러질수록, 또 존경을 받으면 받을수록 정치가들이 간섭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는 귀족이 그리 많지 않다. 영국의 앤 공주, 모나코의 앨버트 2세 왕자 등 손에 꼽을 정도가 됐다. 이들 귀족 IOC 위원 가운데 몇몇은 올림피언이기도 하다.
IOC는 국가올림픽위원회(NOC)가 있는 나라나 지역에 사는 주민들 가운데 프랑스어나 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을 위원으로 선출하지만 이는 IOC에 대해 그 나라나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나 지역에 대한 IOC의 대표다.
한국인 IOC 위원이 한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예를 들어 2018년 동계 올림픽 개최지 결정투표에서 평창을 찍는 정도다. 그것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북한의 IOC 위원인 장웅이 북한 스포츠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신아람의 계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일각에서는 토마스 바흐(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플러레 단체전 금메달리스트), 클라우디아 보겔(2004년 아테네 올림픽 에페 단체전 은메달리스트) 두 독일 IOC 위원이 모두 펜싱 선수 출신이라는 사실을 제기했다. 상대 선수였던 브리타 하이데만의 국적이 독일이었던 까닭이다. 이들은 FIE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들의 존재가 FIE 관계자들에게 간접적 영향을 미칠 수 있으리라는 추론은 가능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추론일 뿐이다.
IOC 위원보다는 오히려 IF의 주요 보직에 한국인이 진출하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1990년대 주요 종목 IF 재정위원장을 한국인이 맡은 적이 있다. 이 위원장은 아프리카 나라 국제 심판이 국제 대회에 출장을 갈 때 프랑스에 유학하고 있는 딸을 만나보고 갈 수 있도록 하루 이틀 정도 파리를 경유해 갈 수 있는 항공권을 끊어 주는 방식 등으로 편의를 베풀었다.
이 심판이 한국 선수가 출전하는 경기에 나섰을 때 어떤 판정을 했을까.
신명철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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