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매체는 런던 올림픽이 ‘경제적 실패’가 될 것으로 분석하며, 올림픽이 끝나면 ‘트리플딥’에 빠질 수도 있다고 예상한다. 반면 일부에서는 7~8년이 지나면 올림픽의 경제적 효과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올 초, 여름방학 즈음 해외어학연수를 준비하던 대학생 K 씨는 연수 후보지 중에서 영국을 지웠다. 작년 말까지 가장 마음이 끌리던 곳이었지만 올림픽 탓에 학비를 포함한 경비가 더 들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이벤트가 열리기도 전에 자국인과 관광객에게 “혼잡을 피해 달라”고 주문했다. 이런 노력 덕분일까. 런던은 혼잡은커녕 ‘유령도시’ 얘기가 나올 정도로 한산했다.
런던에 때 아닌 한기가 불어 닥쳤다. 올림픽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 건 우리네 새벽 거실 풍경뿐 이었나 보다. 런던의 명물인 ‘오스틴 택시(Austin Taxi in London)’ 운전사들은 ‘재앙’이라는 단어로 런던의 상황을 말했다. 실제로 8월 들어 런던 택시 운전사들의 수입은 40%까지 떨어졌다. 도시 전체의 교통량 자체가 20% 이상 줄었다. 올림픽을 보러온 관광객 50만명은 기존 런던의 방문객(하루 평균 110만명)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이 50만명은 쇼핑이나 식사, 그리고 관광에 지갑을 열지 않은 ‘순수 스포츠팬’이었다는 후문이다.
선수와 관계자 등 대회 운영자들이 묵은 고급호텔들을 제외하면 도시 인근 호텔들의 점유율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 대영제국이 자랑하는 유명 박물관에 ‘줄’은 사라졌으며, ‘브로드웨이’와 함께 전 세계 무대공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웨스트엔드(West End)’는 황무지가 됐다. 기존 런던 시민은 ‘탈(脫)런던’ 혹은 ‘두문불출(杜門不出)’했다.
지난 5일, 미국의 한 경제매체 트위터는 “런던은 ‘좀비도시’로 전락했다”며 “런던올림픽은 경제적 실패가 될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혼잡을 피해 달라”던 정부가 “이제 그만 돌아와서 쇼핑도 하고 외식도 해 달라”고 사정할 기세였다. IMF에 따르면 런던은 지난해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관광 수입(256억달러)을 벌어들인 도시다. 이러한 상황에 고개를 갸웃하게 되는 근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결과적으로 지나친 ‘선제 대응’이 특수에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발 앞서 혼잡 경계 메시지를 천명한 당국은 다소 무안해졌다. 웨스트엔드 소매업계를 대표하는 ‘뉴웨스트엔드컴퍼니’의 최고경영자 리처드 디킨슨이 런던 교통당국에 “교통대란에 대한 경고음을 낮춰 달라”고 촉구한 것도 당국의 과도한 우려가 축제에 찬물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대부분의 경제학자는 “세계 최고의 관광 도시이기 때문에 올림픽을 통한 관광으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올림픽이 아니더라도 관광객이 차고 넘치는 문화와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 때문에 올림픽 특수는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승승장구 영국 선수들 뒤 ‘초라한 경제성적표’
영국 경제는 2008년부터 5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 후 잠시 회복세를 보이는가 싶더니 유럽 금융위기 등의 악재와 겹쳐 다시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4/4분기부터 올해 2/4분기까지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나타내며 더블딥에 진입한 상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는 평가다. 때문에 이번 올림픽을 ‘전환점’으로 삼으려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당연하다.
영국 정부에 의하면 올림픽 유치에 투자한 비용은 150억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경기장 건설과 지하철 리모델링 등 사회간접자본시설에 전체의 74%인 111억달러가 투입됐다. 또 숙박·수송 등 행사 진행 비용에 8억5000만달러, 치안유지 비용에 3억달러가 각각 쓰였다. 이러한 투자와 함께 영국 정부는 올림픽의 장기적 경제효과가 침체에 빠진 자국 경제를 구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숨기지 않았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올림픽 전후 기간에 10억파운드(약 1조7800억원)의 경제효과가 창출될 것이며 2015년까지 130억파운드(약 23조1700억원)로 늘어날 것”이라고 전한 바 있다. 올림픽 공식파트너인 비자카드(Visa Card)는 “이번 런던올림픽이 영국에 가져다주는 경제효과는 한화로 약 1조9000억원”이라면서 “행사가 끝난 후 2016년까지는 9조원의 경기 부양 효과도 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정부 당국도 올림픽 동안 10억파운드 해외투자 유치를 목표로 ‘글로벌 투자 콘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갔다. 금메달 22개로 3위(9일 기준)를 달리는 등 훌륭한 성적을 기록하고 있는 영국 올림픽 선수단에 반해 경제 성적표는 초라하기만 하다. 관광객 증가로 인한 서비스 수지 개선을 꾀했지만 상황은 앞서 소개한 대로다. 이미 GDP에 반영된 인프라 투자 외에는 기대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향후 회복세도 실낱같다. 물론 회복의 낌새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자드 쟁가너 슈로더투신운용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올림픽 개최로 영국 경제가 3분기에 0.5% 성장세로 반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아자드 쟁가너는 “내년 2분기부터는 다시 마이너스 성장으로 돌아서 경기침체가 이어질 것”이라고 점쳤다. 그야말로 ‘반짝’ 특수인 셈이다. 무디스는 “런던올림픽이 영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며 “특히 ‘긴축올림픽’을 표방했지만, 행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어 결국 빚잔치로 끝날 것”이라고 비관했다.
더 큰 악재는 행사 후에 찾아올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씨티그룹의 마이클 손더스는 “영국이 올림픽 후 트리플딥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했다. 아자드 쟁가너 또한 의견을 함께했다. 그는 영국 중앙은행이 꺼낼 만한 경기부양 카드가 없다는 점, 내년 초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가 가시화하면서 유럽발 경제위기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는 점 등을 트리플딥의 이유로 들었다.
런던올림픽, ‘돈벌이’로 보면 적자, ‘축제’로 보면 흑자?
스테판 스지만스키 미시간대학 교수는 “올림픽 개최는 파티를 여는 것과 같다”며 “즐겁지만 당신을 부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경제적 효과의 부진이 비단 런던올림픽만의 문제는 아니라는 얘기다. 이는 역대 개최국 사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88년 서울올림픽 이후 올림픽으로 경제적 ‘재미’를 본 사례는 96년의 미국 ‘아틀랜타(Atlanta) 올림픽’이 유일하다. 바로 직전 행사였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은 빚잔치의 화룡점정이었다. 전문가들은 “발표(2억달러)와 달리 실제 적자 규모는 4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올림픽의 저주’라는 말이 나도는 이유다.
이처럼 올림픽의 효과를 단순히 경제지표로만 따진다면 ‘쓴맛’을 피해 가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국가 이미지 향상이나 결속력 제고, 도시·지역개발, 경제 인프라 구축 등 수치로 환산하기 힘든 부분까지 고려한다면 올림픽으로 인한 긍정적 효과가 큰 것은 분명하다. 또한 이 같은 효과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 힘이 더 커진다.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 관계자는 “개회식을 포함한 행사 등을 통해 새로운 런던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보여줬다”면서 “장기적으로는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낙관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결국 국제도시로의 지위를 확보한 ‘서울’을 기억하면 그 효과가 더 피부에 와 닿는다.
이번 런던 올림픽의 주제는 ‘세대에게 영감을(Inspire a Generation)’이다. 실제로 사상 최초로 같은 도시에서 세 번째 열리는 만큼 차후 개최국들이 본받을 수 있는 점들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다. 최초로 모든 참가국이 여성 선수를 파견해 여성 스포츠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영감은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라면, 무조건 크고, 화려하게 준비해야 한다”는 선입견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는 점이다.
영국은 이번 올림픽을 ‘긴축을 기본으로 한 실속올림픽’이라는 전략 하에 준비했다. 김도균 경희대학교 체육대학원 교수는 “이번 올림픽을 보면 과도한 씀씀이로 적자를 내지 않겠다는 각오가 곳곳에 서려 있다”면서 “런던 도심을 돌아보면 과연 이곳이 올림픽 개최 도시일까 싶을 정도”라고 했다. 이를 위해 영국은 유명 공원들을 중심으로 경기 시설물을 집중 배치해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시설물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줬다. 또한 기존에 공짜표나 관계자용 티켓이 난무하던 관례를 극복해 경기장 티켓 판매와 입장관리에서 누수를 없애기 위한 치밀함도 보여줬다.
김도균 교수는 “런던 올림픽의 경제적인 효과는 향후 7~8년이 지나야 제대로 알 수 있다고 본다”면서 “최상의 시설을 제공하기 위해서 새로운 경기장과 시설을 만들 궁리를 하고 있는 다른 나라의 조직위에게, 이번 올림픽은 분명 배우고 따라야 할 것이 많은 대회”라고 전했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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