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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공포·우울..옛 東獨의 맨얼굴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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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치히에서 온 현대독일미술 展


욕망·공포·우울..옛 東獨의 맨얼굴을 보다 크리스토프 루크해베를레(Christoph Ruckhaberle), 예술가(Artist), 2008, 200x130cm, 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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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1989년 11월 9일 독일을 동서로 가르며 분단과 냉전 체제의 상징이자 유산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됐다. 자유를 향한 28년의 외침과 탈출의 시간이 마무리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독일 통합과정은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다방면에서 커다란 변화를 몰고왔다. 특히 구동독의 문화와 예술은 서독 및 전세계인에게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섰다. 구동독 도시들만의 독특한 역사적ㆍ문화적 특수성 때문이다.


◆독일 현대미술의 새 대안 '라이프치히 화파'= '작은 파리', '플라이스 강변의 아테네'라고 불리는 도시, 라이프치히(Leipzig). 이곳은 남북으로는 스칸디나비아에서 이탈리아로, 동서로는 프랑스에서 모스크바에 이르는 교차로에 위치해 상업도시로 융성한 발전을 이루기도 했었다. 또 음악의 아버지 바흐가 활동하며 수많은 교향곡을 탄생시켰던 곳이다. '19세기 모차르트' 멘델스존과 히틀러가 사랑한 음악가 바그너의 고향이기도 하다.

비단 음악과 상업뿐만이 아니다. 구동독시절 기도와 저항의 피난처였던 니콜라이 교회가 위치하며 베를린 장벽을 허무는 시발점이 된 라이프치히는 평화로운 혁명의 선구자이자 베일에 가려졌던 동독의 고유문화에 대한 목마름을 채워줬다.


1990년 통일을 맞이해 라이프치히는 전통적 인쇄산업을 바탕으로 한 독특한 현대 디자인으로 전 세계 디자이너들과 새로운 예술을 갈망하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찾는 글로벌 예술도시가 됐다. 구동독의 미술을 이어받은 독일 현대 미술의 새로운 요충지로도 부상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라이프치히 시각 예술대학'이 있다. 학교가 한 화파를 이루는 보기 드문 사례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라이프치히 화파의 그림들을 만나볼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지난달 6일부터 성남아트센터에서 개최된 'German Now: from Leipzig'(라이프치히에서 온 현대 독일 미술) 전시다.


라이프치히 화파는 구동독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철저하게 학습한 작가들이 현대미술로 전향한 예로써 주목받은 작가군이다. 이 작가들은 1960년대부터 서구에서 서서히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선전적 사실주의를 그리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을 추구하며 두려움과 욕망을 드러내는 동시에 무력함을 보여주는 작품들이 주가 됐다. 1990년대 이후에는 '신 라이프치히 화파'로 분류되면서 기술적인 스킬, 구상미술에 대한 전념, 무미건조함에 대한 특별한 편애와 우울한 주제들을 공유한다.


욕망·공포·우울..옛 東獨의 맨얼굴을 보다 로자로이(Rosa Loy), 아침(Morgen), 2007, 266x139cm, casein(카세인) on canvas


◆라이프치히 화파 대표작품 한자리에=세계적으로 유명한 서독 출신 화가에 안젤름 키퍼(Anselm Kiefer)나 게르하르트 리히터(Gerhard Richter)가 있다면 동독에는 라이프치히의 선두주자 네오 라우흐(Neo Rauch)가 있다. 이번 전시에서 소개되는 라이프치히 작가들에는 네오 라우흐의 아내인 로자 로이(Rosa Loy), 하트비히 에벌스바흐(Hartwig Ebersbach), 크리스토프 루크해베를레(Christoph Ruckhaberle) 등 20여명의 작가들이 만든 60점의 페인팅, 사진, 설치, 비디오 작품들이 소개되고 있다.


로자 로이의 작품으로는 '아침', '밤'이라는 두 대형 작품이 전시됐다. '아침'에는 8명의 여자들이 나온다. 성인 여성 둘, 요정처럼 보이는 인물 둘, 여아 두 명 등 모든 여성 인물들이 쌍으로 그려져 있다. 떠오르는 태양이 강물에 비치며, 한 여인은 두 여아를 안고 지그시 눈을 감고 있다. 작품 '밤'에는 한 사슴이 어린 여아들을 껴안고 캠핑장과 같은 배경에 지펴진 불을 응시한다. 모두 강하지만 부드러운 여성성이나 모성애를 자아내는 작품들이다.


이번 전시의 공동 주관사인 UNC갤러리 관계자는 "로자는 네오만큼이나 유명한 작가로 여자만 그리는 것이 특징인데 여성에 대한 전통지식, 여성성, 불가사의나 낭만주의, 신비함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 "네오가 직선적이고 남성성이 강한 작품들이 많아 로자의 작품과는 상반적인 분위기를 이룬다"고 설명했다.


욕망·공포·우울..옛 東獨의 맨얼굴을 보다 하트비히 에벌스바흐(Hartwig Ebersbach), 카스퍼 구두(Kaspar Damenschuh) IV, 2010, 140X87cm, oil on canvas


하트비히 에벌스바흐의 작품 'Kapar Damenschuh Ⅳ(카스퍼 구두)'는 물감 덩어리를 던져 뭉갠듯하다. 노란색과 빨간색을 주색으로 해 서로 섞여 어지러운 형태를 이룬다. 캔버스를 땅에 펼쳐 발로 많은 양의 물감을 퍼뜨리는 액션페인팅이다. 표현주의 계보를 잇고 있는 하트비히는 이번 전시에서 연배가 가장 높은 화가다. 72세로 구동독시절을 가장 오랫동안 경험한 그는 캔버스에 자기 내면의 억압적인 감정을 쏟아내는 듯하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하트비히는 '카스파(Kaspar)'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데, 필명을 쓰는 작가로서의 자신과 작가가 아닌 자기를 분리시킨다.


크리스토프 루크해베를레는 작품 'Artist(예술가)'에서 대형 꼭두각시를 표현했다. 휘둥그레 뜬 눈에 양손가락은 양 옆구리 방향으로 활짝 편 채 약간 기우뚱한 자세로 서 있는 꼭두각시다. 일그러진 신체나 옷의 장신구 등은 원형이나 사각형 등 기하학적 모양을 가져 단순하다. 코믹스럽지만 자세히 감상하면 냉소적이면서도 공포스러운 표정이다. 채도나 표정도 어둡다.


욕망·공포·우울..옛 東獨의 맨얼굴을 보다 율리어스 호프만(Julius Hofmann), 왕좌(Thron), 2011, 155x110cm, acrylic on canvas


율리어스 호프만(Julius Hofmann)의 그림은 이보다 더 공포스럽고 괴기하다. 30대 젊은 작가인 그는 현대인의 나약함을 작품에서 드러낸다. 몸은 뾰족한 삼각형, 사각형에다 얼굴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거나 해골모습을 지녔다. 속으로는 한없이 약한 현대인이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뒤집어 쓴 가면이다. 이는 현대인을 휘감은 폭력성과 잔혹성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려는 형상들을 상징화한 것이기도 하다. 중견 작가와는 크게 대비되는 율리어스의 작품은 성격자체가 다르다. 섬뜩한 그림들이 주를 이루는데, 그는 라이프치히 화파 내 주목받는 젊은 작가다.


UNC갤러리 관계자는 "라이프치히 화파의 태동에서부터 전개까지 구동독 현대 미술의 전체적인 면모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전시"라면서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면모들은 독일 통일 이후 세계 유일의 분단국인 한국사회에도 의미심장한 메시지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내달 2일까지. 문의 031-783-8142~6




오진희 기자 val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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