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기자의 ‘아름다운 집’ 순례⑨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작품성을 염두에 두고 집을 지었다면 분명 그 집에는 예술과 현실의 경계선이 깃든다. 이 경계선에 모순적인 공간이 공존한다. ‘리얼리티’와 ‘판타지’. 두 개의 공간을 공존하게 만드는 시약은 ‘시간’이다. 이태원동 고질라(GODZILLA)는 이런 시간의
연속성을 담은 곳이다.
대지에 버티고 있는 모습은 분명 괴물같다.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지만, 안에 들어가면 하얗고 작은 모습이다. 이 주택에 ‘고질라’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다. 고질라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이유는 또 있다. 까다로운 설계로 매 순간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고질라는 30대 부부와 두 명의 자녀를 위해 지은 집이다. 남산에서 천천히 경사를 따라 내려오는 길에서 갈라지는 삼거리 중앙에 버티고 있다. 고질라는 이른바 땅 귀퉁이에 지어졌다. 대지 202㎡(60여평)에 건축면적 120m²(36여평)의 3층 구조다. 대지가 비교적 작아서 집 모양도 도로 쪽으로 땅의 모양에 따라 등을 돌려 둥글게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담장이 없다. 땅 모양 덕분에 전략적인 설계가 동원됐다. 공간을 최대한 끌어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고질라의 가장 특이한 점은 외벽이다. 스테인리스 스틸로 단단히 감싸 투박하면서도 단단한 느낌을 전한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빛의 밝기에 따라 여러 색깔을 뿜어낸다. 날씨가 흐릴 때는 강하면서 온아한 빛을, 날이 맑을 때는 청명한 빛을 쏟아낸다.
1층 곡선은 파사드(Facade)를 따라 이어진 12개의 이중 타공패널을 이용해 자동슬라이딩 방식으로 열리는 주차장으로 만들어졌다. 이 패널은 밖에서는 절대 안을 볼 수 없지만, 안에서는 밖을 볼 수 있는 소재다. 밖에서 보면 일반 문이 아닌 하나의 스크린처럼 느껴지도록 했다.
이 주차장은 1층과 거실이 만나는 구조다. 현관과 주방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타공패널과 함께 새로운 시선을 만드는 효과를 만들었다. 파사드는 또 다른 색상 변화를 주면서 집을 감성적 공간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단순해서 강하다
고질라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하늘과 빛이 만나는 계단이다. 천장 채광창을 통해 푸른 하늘 빛과 남향에서 쏟아지는 빛이 동시에 쏟아지도록 했다. 이는 파사드에서 볼 수 있는 빛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하얀 벽과 만나 휘감아 쏟아지는 빛은 단순한 효과를 넘어 감성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계단은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을 전달한다. 바닥으로 내려놓지 않으면서 효과를 더욱 높였다. 주차장과 정원이 작아 공간 극대화를 위해 바닥재에도 신경을 쏟았다. 테라조 가운데서도 원형이 큰 바닥재로 마무리했다. 또 1층 조명기구의 높이까지 신경을 쏟으면서 공간이 더욱 커 보디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고질라의 또 다른 강점은 밖과 안 모두 동일한 느낌을 전달하는 동선이다. 남산에서 이태원으로 내려오면서 이 집을 만나는 동선과 집 안에서 1층에서 2층 그리고 3층으로 발을 옮기는 동선 모두가 닮았다. 이 동선은 최대한 짧은 거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집을 편안하고 즐겁게 느끼는 발걸음이다.
벽을 따라 움직이는 동선에 천장 채광과 남쪽 채광을 만나면서 즐거움은 배가 된다. 고질라 설계에 따른 동선이기도 하지만 건축사의 의도이기도 하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연결해주는 계단에 신경을 쏟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수직적인 구조를 연결해주는 공간을, 효율적이고 퀼리티를 높인다면 공간이 살아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고질라의 특징은 밖에서는 사면이 막혀 닫혀 있는 느낌이지만 집 안에서는 사방이 열려 있다는 것이다. 이 효과는 인테리어와 맞물려 있다. 공간이 열려 있는 모습은 단순하도록 세밀하게 작업한 효과다.
고질라는 2009년 서울시 건축상과 2009년 한국건축가협회 엄덕문상을 수상했다. 2010년에는 하버드대 한국건축특별기획전에 참여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동
면적 대지 202㎡(60여평), 건축면적 120m²(36여평)
특징 긴 줄기에서 만나면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효과
건축사 최-페레이라
최성희 건축사, 로랑 페레이라 고려대 조교수
이렇게 설계했다 | 최성희 건축사·로랑 페레이라 고려대 조교수
“건축은 역사와 시간을 지나는 타임머신”
시간이 만나는 공간을 건축이라고 한다면 건축사는 이를 투영하는 직업이다. 시대를 반영하고 삶을 녹이기 위해서는 ‘시간’을 잡아야 한다는 의미다. 고질라를 설계한 최성희 건축사와 로랑 페레이라 고려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는 이런 과정을 탐닉한다. 건축주의 과거와 미래가 담기는 집이다. 독창적이어야 하지만 도시와 닮아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이야기다.
최성희 “건축은 두 개의 거울과 같습니다. 하나는 섬세하게 다듬어져 시간을 정의하고 역사적 사실을 비추고, 반대편 거울은 거칠면서도 빠른 속도를 가졌죠. 순간적이면서 원시적인 이미지를 보여주는 거죠.”
한국인들은 항상 빛이 삶을 만들어 낸다고 믿는다. 특히 한국건축의 특성에서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빛을 받아들이는 효과는 지극히 개별적이지만 스타일은 아니다. 그동안 주거문화보다 경제적 지배가 큰 영향 때문이다.
페레이라 “한국의 집은 유럽과 비교할 수 있는 문화는 아닙니다. 공동주택의 필요성과 경제적 지배에 따라 주택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죠. 한국 주택문화는 바람과 빛이 넘나드는 공간을 선호한다고 봅니다. 아파트도 마찬가지죠.”
최 건축사는 집은 다듬어지지 않은 환상의 덩어리라고 했다. 또 하나의 살아 있는 구성체로 봤다. 발견되고 분석되면서 설명되지 않은 공상적인 이미지가 덩어리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최 건축사의 건축 지론이다.
최성희 “건축사는 두 차원을 반영한다고 봅니다. 하나의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예술과 문화, 역사에 의지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결과를 통해 복합적이면서 기하학적으로 접근하는 일종의 놀이로 볼 수 있겠죠.”
현대사회는 모든 것이 디자인된다고 했다. 그 형태는 전문가에 의해서 만들어져 상품으로 만들어져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건축은 얇은 한 가닥의 끈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건축은 조금 더 지적이면서 정신적인 정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성희 “건축가가 하는 일은 지각의 대상이 되는 공간을 조직하는 일이라고 봅니다. 형태를 만들고 기술적인 해결안을 제시하는 것이죠. 집을 꿈꾸고 다리와 도시를 상상하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은 창조와 현실적 과정을 연속적으로 변이한다. 건축가가 한 명이기도 하지만 두 명 혹은 수십 명이다. 페레이라 “건축 모델은 계획을 변형시키고 생각했던 재료와 디테일의 의도를 바꾸기도 합니다.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의 구분이 없어지는 것이죠. 그 공간 안에서 환상적인 관계를 만들고 현실로 만들어 내는 거죠.”
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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