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영 기자의 ‘아름다운 집’ 순례 ⑥ | 서울 혜화동 ‘계단집’
집은 커뮤니티다. 모여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한다. 이는 집이 가진 최소한의 강점이다. 집의 가치나 역할은 엄청나게 크고 넓다. 사람의 감성을 키우고 지성을 닦는 가장 편안한 공간이기도 하다. 화합하고 도모하면서 ‘가족’이 탄생되고 가장 끈끈한 네트워크를 만들어낸다. 서울 혜화동의 계단집에 들어서는 순간 이같은 생각들이 동시에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계단집’은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오섬훈 대표의 자택이다. 이 건물은 지하층(지층)과 1층은 어반엑스 사옥으로 사용하고 2층은 원룸, 3층은 자택으로 만들었다. 건물은 총396㎡(120여평), 자택은 112㎡(34여평)이다.
사무실인 1층은 이른바 반계단층 올라간 반층구조로 만들어졌다. 주차장을 만들기 위해서 이런 구조가 탄생했지만 공간감이 일반 사무실보다 휠씬 높다. 반층구조는 2층에서 근무하는 효과는 물론 1층과 합쳐지면서 공간을 더욱 넓은 효과를 발휘했다. 지하층(지층)은 공간감을 거의 상실한다. 건물 앞뒤와 1층에 채광창을 설치하면서 사실상 1층과 2층에서 근무하는 이상효과를 만들어냈다. 지층에는 야외 테라스를 만들어 채광과 통풍효과를 극대화 한 것도 이런 이유다.
이런 구조에는 ‘계단’의 효과가 크다. 어반엑스의 모든 공간은 계단으로 연결됐다. 지층과 3층까지 오묘하게 뻗은 이 계단은 마치 건물을 휘감고 있는 느낌을 전한다. 계단은 3층 주택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옥상으로 이어진다. 이 주택을 ‘계단집’으로 부르는 이유다. 이 계단의 시작과 끝이 재미있다. 계단의 시작은 건물 입구부터지만 사실상 ‘동네’ 입구로 볼 수 있다. 어반엑스 앞 자그마한 화단은 주민들의 휴식장소로 활용되면서 계단의 시작은 넓다.
집안 곳곳에 만남과 대화의 공간 절묘한 배치
어반엑스가 계단집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층과 층을 연결하는 단조로운 구조가 아닌 ‘만남’을 구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계단 곳곳 서로 얼굴을 마주칠 수 있는 유리구조다. 이 유리창에는 간단한 문양도 눈에 띈다. 사람들이 눈이 마주칠 때 어색함이나 머쓱함을 없애기 위해서다.
3층은 더욱 더 재미난 구조를 띠고 있다. 천정과 슬라브가 모두 15도 이상 각도로 꺾여 있다. 일조권을 위해 경사면으로 설계된 탓이지만 오히려 단조로운 구조를 벗어나 지루함을 없앴다. 3층 주택은 큰방과 작은방 3개로 만들어졌다. 복층구조 형태 역시 ‘계단’으로 옥상까지 이어지는 구조다.
각 방 마다 채광이 훌륭하다. 경사면 구조에 채광창이 직선이 아닌 경사구조로 만들어져 빛을 더욱 더 많이 흡수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이런 채광창 때문에 공간감이 매우 좋다. 우선 안방은 물론 3개의 작은 방은 일반 아파트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채광창을 넓게 설치하면서 공간이 더욱 커졌다. 이런 효과에는 가구도 한 몫했다.
오 대표는 집을 설계할 때 각 공간마다 가구까지 직접 챙겼다. 부피가 큰 가구는 오히려 공간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람 키를 넘지 않는다. 계단집은 주방도 매력적인 요소 중 하나다. 주방은 세탁실과 작은 테라스 그리고 식탁까지 한 동선으로 연결했다. 오대표의 부인이 직접 설계에 참여할 정도로 이 공간에 정성을 들였다. 흥미로운 것은 일반 중형아파트에 비해 작은 주방이지만 크고 넓어 보인다는 점이다.
계단집의 가장 큰 매력은 작은방 중간에 꾸며진 작은 응접실이다. 옥상으로 연결되는 이 공간은 휴식과 함께 주변 풍경을 관람할 수 있는 곳이다. 비가 올 때 이 응접실의 효과는 배가 된다. 가족들이 모여 앉아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기도 한다. 옥상은 또 다른 만남의 장소다. 모든 경사면이 모아지고 계단의 끝인 이곳은 혜화동 주변을 모두 관람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닥은 나무 바닥재를 사용해 옥상의 일사열을 막고 가족 혹은 게스트들과 함께 자그마하게 파티를 열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했다. 계단집의 매력은 항상 만남이 이어지고 대화할 수 있는 공간이 많다. 이런 공간은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든다.
이렇게 설계했다 | 오섬훈 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대표&건축사
“집은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매개체가 필요”
집은 시대정신과 만난다. 다만 시대정신은 건축가의몫이라기 보다는 집을 가꿔가는 건축주의 역할과 맥이 닿아 있고 이다. 오섬훈 대표는 이런 과정을 통해 집을 단순히 짓는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건축가의 색깔을 드러내기 보다는 하나하나의 과정을 통해 ‘소통’을 하고 ‘여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건축의 묘미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집이 갖는 상징성은 대단합니다. 공간의 연결도 중요하지만 보여주기 위한 역할도 크다는 것이죠. 이런 과정은 집이라는 공간이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그 매개체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죠.”
계단집을 탄생시킨 배경이지만 집이나 사무실 모두 서로를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오대표의 지론이다. 건축은 공간을 창조하지만 건축가는 공간을 이어주는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반적인 공간이 모여 합쳐진 공간은 단순한 지배구조에 불과하죠. 트렌드가 아닌 건축물을 대표하는 아이콘이 만들 경우 상징성을 갖게 되고 사람들이 함께 공통분모를 형성하는 것이죠.”
오 대표가 생각하는 집은 크게 두 가지를 담아야 한다. 기능성과 상징성이다. 건축가마다 서로의 관점이 다르지만 오 대표는 상징성을 중요하게 본다. 기능만을 강조하다보면 색깔을 잃고 집은 단순히 편리한 공간으로 밖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은 자신의 얼굴이기 보다는 또 다른 표현의 수단으로 봅니다. 내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줄 때 이 공간은 또 다른 커뮤니티가 된다고 봅니다.” 집은 ‘소재’에 따라 변한다. 이 소재는 바로 재료다. 콘크리트 역시 그런 물성의 한 부분이다. 물성에 따라 집은 달라지고 성질이 변하게 된다.
“집은 땅, 지역에 따라 처음 설계와 완전히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지역에 집을 지었는데 그 곳이 습기가 많은 곳이라면 당연히 소재를 달리 사용해야 하는 것이죠. 집이라는 공간은 결국 이런 것들을 두루 망라하는 집합체라고 할 수 있지요.”
오 대표는 집을 ‘연애소설’에 비교했다. 연애소설마다 다양한 소재가 있지만 ‘연애’라는 주제는 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연애소설에 비교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집이라는 공간이 애틋함과 ‘애증’ 마저 품고 있다는 그의 철학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집은 큰 테두리 안에서 공간을 형성합니다. 연애소설을 집필하는 것처럼 큰 주제 안에서 어떤 소재로 만들지를 고민하는 것이지요.”
주소 서울시 종로구 혜화동 73-6번지
면적 총396㎡(120여평) 자택112㎡(34여평)
특징 사방으로 뻗은 계단과 각 공간마다 전부 모양이 다른점이 특이하다.
건축사 오섬훈 건축사(건축사사무소 어반엑스) tel 02-741-0773
이코노믹 리뷰 최재영 기자 som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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