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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어붙이기도 정도가 있지..." 인천 농경지 침수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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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노승환 기자]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밀어붙이기'식 지하차도 공사로 인천 서구에서 논ㆍ밭 6천㎡가 침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임시 배수관 공사가 잘못돼 작물 수천 만원 어치가 그 자리에서 썩고 죽었다. 보상은 둘째 치고 당장 물을 빼내는 일조차 더뎌 피해농민의 속만 까맣게 타고 있다.


11일 오후 찾아간 인천 서구 연희동 151번지 일대. 어제 내린 비로 논ㆍ밭 6000여㎡가 또 다시 물바다가 돼 있었다. 바로 앞 대로 변에선 LH가 진행 중인 연희 지하차도 공사가 한창이었다.

침수 후 2주 째 펌프로 물을 퍼내고 있다는데 논ㆍ밭엔 여전히 무릎까지 물이 차 있었다. 두 달 전 모내기가 있었던 논은 벼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었다. 출하를 앞뒀던 오이 밭엔 검게 썩은 오이와 이파리들이 지저분하게 뒤엉켜 있었다. 당근이 심어졌던 밭은 마치 갯벌 같았다. 손을 넣어 휘저어보니 문드러진 붉은 색 당근이 진흙과 섞여 나왔다.


10여 년 동안 이 곳에서 농사를 지어온 김정임(70)씨는 고추를 보여준다며 물에 잠긴 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김씨가 손에 든 이파리에는 이젠 몇 개 남지 않은 고추가 썩은 채로 매달려 있었다. 김씨는 "이 게 도데체 무슨 난리인지 모르겠다. 1년 농사가 하루 아침에 이렇게 날아가 버렸으니 어찌해야 좋을지 막막하기만 하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이 일대에선 김씨를 포함해 모두 4명이 농사를 지어왔다. 이번 침수로 벼, 땅콩, 오이, 참외 등 27가지 작물이 피해를 입었다.


침수는 LH가 연희 지하차도를 만들면서 땅 속에 묻혀 있던 기존 배수관에 임시 배수관을 연결하면서 시작됐다. LH가 지하차도 공사를 위한 우회도로를 만드는 과정에서 임시 배수관이 흙에 파묻혀 버렸다. 배수관 출구를 엉뚱한 곳에 빼면서 생긴 일이다. 빠져야 할 빗물은 논ㆍ밭으로 역류했다.


본래 도로 공사를 하면서 지하 배수관에 손을 대려면 시행자는 관할 구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지만 LH는 이 절차를 밟지 않았다. 인천시와 '임시 도로점용 허가'에 대해서만 협의한 채 임의로 임시 배수관을 설치한 것이다.


LH 청라ㆍ영종사업단 담당자는 "도로 점용에 대해 포괄적으로 시와 협의만 하면 됐지 배수관 같은 지하 매설물 하나하나에 대해 일일이 협의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해 배수관을 그 쪽에 묻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LH는 급한대로 양수기 4대를 동원해 일단 물을 빼내고 있다. 임시 배수관을 옮기는 등의 배수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피해를 입은 농민들에 대한 보상대책 논의는 시작조차 되지 않아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승환 기자 todif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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