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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폭력, 그 불편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40초

가해학생 부모들의 진실 은폐..비뚤어진 자식愛 그대로 드러내

학교폭력, 그 불편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연극 <니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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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학교폭력이 신문 사회면의 단골 메뉴로 등장하기 시작한 건 불과 몇 년만의 일이다. 처음 학교폭력 문제가 불거졌을 때 '어른들'의 반응이란 이런 것이었다. "우리 때도 한 반에 한 명씩은 꼭 따돌림 받는 애들이 있었지. 친구들끼리도 곧장 치고 받고 했었는데..."

어른들이 학교폭력을 학창시절의 무용담이나 통과의례처럼 여기는 동안에도 '요즘' 학생들은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면서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결국 어른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것을 몇 명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나서였다.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는 학교폭력의 실상을 그대로 무대 위에 올려놓은 작품이다. 극에 나오는 학부모들의 대사나 교사들의 반응은 현실과 판박이지만 그 어처구니없음이 실소를 자아낸다. 어디까지가 극이고 현실인지 분간하기 힘든 블랙코미디다. 김광보 연출가는 "점점 심각해지는 왕따 문제는 더 이상 누구의 책임으로 미룰 것이 아니라 누구든 책임을 지고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라고 연출의도를 설명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상담실. 다섯 학생의 학부모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영문도 모르고 학교로 소집된 학부모들은 담임교사로부터 2학년3반 한 학생의 자살 소식을 듣는다. 학교는 임시휴교령이 내려졌다. 학생부장은 자살한 학생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유언장을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간다. 왕따를 당하고 있어 학교 다니기도 힘들었다는 참담한 고백이었다. 편지 말미에는 다섯 학생의 이름이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여기서부터 연극은 '니 부모 얼굴이 보고싶다'는 제목에 충실해진다. 어른이 되기 전에 괴물이 되는 아이들을 볼 때 우리는 문득 궁금해한다. '저 아이의 부모는 누구일까?' 연극의 주인공은 한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가해학생들의 부모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부모들이 자신의 딸이 끔찍한 일을 저질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가 이 연극의 핵심이다.


학교폭력, 그 불편한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



예상대로 이들의 반응은 상식 밖이다. "설마 우리 아이가..." 하는 당혹감에서 벗어나자마자 부모들은 작심한 듯 진실을 은폐한다. 일이 커지지 않게 학교에 압력을 행사하고, 심지어 유일한 증거인 피해학생의 유서마저 불태워 없앤다. 상황이 여의치않자 이들은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라며 오히려 이 모든 상황을 피해학생의 개인적인 치부로 돌려버린다. 신발을 숨기고, 교과서를 뺏고, 체육복을 쓰레기통에 넣는 일도 학부모들은 '이 정도', '별 거'라고 여긴다.


학부모들의 집단 이기주의가 힘을 발휘할수록, 관객들의 이해도는 되려 높아진다. 왜 이들의 자식들이 삐뚤어졌는지 말이다. 결국 한 소녀의 죽음의 원인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모두 부모의 탓이 되고 마는 셈이다. 심지어 부모들은 자녀들이 보낸 '신호'도 하나씩 무시하고 외면했다. 여기다 학교의 명예가 실추될까 전전긍긍하는 학교측의 모습과 일제고사 전국 상위 5%에 해당하는 명문학교라는 설정은 현실성을 더한다.


이 작품을 쓴 사람은 극단 '와타나베겐시로상점' 대표를 맡고 있는 하타사와 세이고 연출가이다. 25년간의 교사생활 동안 겪었던 일들을 극에도 삽입해 현실감을 불어넣었다. 일본에서는 2008년 초연된 작품으로 한국에서는 지난 1월 현대일본희곡 낭독공연으로 명동예술극장에서 첫 선을 보여 화제가 됐다. 현재는 지난 24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7월29일까지 서울 세종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가해학생의 할머니 역할을 한 손숙은 26일 언론시사회에서 "연극이 관객들에게 재미도 줘야 하지만 사회적 문제를 던질 의무도 있다"며 "반전도 있고 작품적인 재미도 있다. 이런 작품은 학부모, 선생님들이 많이 봐서 학교폭력 문제에 돌이라도 던지는 계기가 됐음 한다"고 말했다.


서늘한 피아노 소리로 시작해서 끝나는 이 연극은 특별한 무대장치나 연극적 설정 없이 학교폭력을 정면 그대로 응시하다. 무대를 어둡게 하는 암전도 없다. 다만 관록있는 배우들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이 몰아친다. 폭력에 대한 책임을 묻고, 반성과 사과를 하려는 시도는 번번이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묻히고 만다. 연극을 보고 나면 끝내 묻게 된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자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출연진 손숙·김재건·박용수·박지일·이대연·길해연·서이숙·손종학·신덕호·이선주·김난희·우미화·백지원·서은경·안준형·최승미 ▲원작 하타자와 세이고 ▲번역 기무라 노리코·이성곤 ▲각색 김민정 ▲연출 김광보 ▲음악 황호준 ▲무대디자인 김은진 ▲조명디자인 최형오 ▲의상디자인 이명아 ▲분장디자인 김유선 ▲소품디자인 최혜진 ▲조연출 구자혜.




조민서 기자 sum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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