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레퍼시픽의 제주녹차 사랑
허허벌판. 1979년 당시 제주도 한라산 중턱이 그러했다. 누군가 여기에 생명을 심어보자고 했다. 故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회장의 생각이었다. 당시 다른 경영진들은 반대했다. 한 두 그루 나무도 아니고, ‘밭’을 형성하자니.
하지만 서 회장은 고집을 쉬이 꺾지 않았다. 황무지에 울퉁불퉁 솟아나온 돌을 손수 걸러내고, 한 시간 여 거리에서 물을 길러와 밭을 다져나갔다. 집념 앞에서 이 같은 수고는 일도 아니었다. 제주를 찾는 이에게 꼭 들러야할 명소로 자리매김한 ‘도순다원’은 이렇게 탄생했다.
미(美)와 건강. 아모레퍼시픽은 이 두 가지 요소에 대한 토탈케어 브랜드다. 화장품 기업에서 녹차 밭을 운영하다니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김정훈 아모레퍼시픽 오설록 브랜드매니저는 이에 대해 “화장품 비즈니스의 핵심은 제품의 원료”라고 명쾌하게 답했다. 요컨대, ‘시작’부터 ‘끝’까지 직접 관리하고 생산하겠다는 뜻이다.
물론 화장품 원료로만 이용하기 위해 녹차 밭을 일구지는 않았다. 10만여 평 밭의 저변에는 30년 다원의 역사를 뛰어넘는 아모레퍼시픽의 ‘녹차에 대한 고집’이 깔려있다. 황무지에서 다원을 일군 서 회장의 고집은 ‘아름다운 집념’으로 통한다. 실제로 서 회장은 차 문화 확산을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는 생전에 “어느 나라를 가든 그 나라만의 차가 하나씩 있기 마련인데 우리나라는 없다”면서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우리의 전통 차문화는 정립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러한 일념은 아모레퍼시픽에 깊이 뿌리박혀 지금까지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김 매니저는 “아모레퍼시픽은 차 산업 침체를 타개하고자 발 벗고 나선 기업”이라고 언급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녹차 브랜드로 ‘오설록’과 ‘설록’을 선보이고 있다. 녹차 비즈니스에 발을 디딘지 30여년. 지금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김 매니저는 “어딘가 모르게 엄숙해 지는 틀에 갇힌 ‘녹차’의 이미지를 탈피하고자 한다”고 했다. ‘기존 이미지의 탈피’는 다른말로 ‘대중화’로 풀이된다.
실제로 많은 전문가들은 차 산업이 활성화 되려면 대중화를 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매니저 또한 같은 고민을 갖고 있다. 그의 고민은 머릿속에서 그치지 않았다. 제품에 반영했고, 잔잔한 변화 또한 몰고 왔다. 변화의 촉매제는 의외로 단순한 데 있었다. 바로 ‘맛’과 ‘멋’이었다. 통상 사람들은 녹차를 맛이 없고 멋이 없는 음료로 여긴다. 이 두 가지 키워드를 보완시키기 위해 김 매니저는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 결과 초록빛 일색이던 녹차 박스가 파스텔 빛깔 새 옷을 입었고, 자기(瓷器)로만 구성됐던 선물세트에 티백 거름막이 장착된 텀블러가 자리 잡았다. 맛은 또 어떤가. 블렌딩(Blending)을 거쳐 최상을 조합을 만들어냈는가 하면 제주 삼나무 통에 발효해 한층 깊은 풍미를 선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맛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제품에는 블랜딩 티, 발효차, 워터플러스 파우더 등이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녹차 제품을 ‘생산’하는 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소비자들과 녹차가 만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여유로움도 선사한 것이다. 2001년 제주에 개관한 ‘티뮤지엄’과 2004년 명동을 필두로 인사동, 압구정에 개관한 ‘티하우스’가 바로 그 예다.
김 매니저는 “티뮤지엄과 티하우스는 차에 대한 경험을 높이는 접점이 되고 있다”면서 “대중화는 이 같은 경험이 누적돼야 비로소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 티뮤지엄의 경우, 연간 100만 명의 방문객이 다녀가고 있으며 매출액은 매년 20%씩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녹차 비즈니스는 아모레퍼시픽 전체 매출액(2011년 기준)의 2.2%에 불과하다. 김 매니저는 “아모레퍼시픽에게 녹차 비즈니스는 수익을 내기 위한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면서 “만일 사업에서 큰 수익을 거둔다고 해도 이는 고스란히 ‘차’산업에 재투자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코노믹 리뷰 박지현 jh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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