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종일 기자]
전날 정당의 심장이자 판도라의 상자로 불리는 당원명부를 검찰에 빼앗긴 통합진보당이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난 15년간 축적해온 20만명의 개인정보가 검찰 손에 들어가자 통진당이 계파와 관계없이 검찰을 규탄하면서도 향후 수사방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퇴를 거부한 비례대표들의 출당 문제마저 시한을 넘기면서 당의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통진당 혁신비대위원회는 23일 이석기ㆍ김재연 당선자 등 경선 비례대표 후보 사퇴 시한을 25일로 연장했다. 강기갑 혁신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회의에서 "당의 심장인 당헌명부가 검찰에 의해 탈취 당하는 사건을 수습하면서 오늘 다시 (비례대표 후보 사퇴를) 호소 드린다"면서 "14명의 경쟁명부 비례대표의 총사퇴를 집행하는 것이 혁신비대위가 수행해야 할 첫 번째 도의"라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25일 정오까지 사퇴서가 제출되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바라지 않았던 최후의 수단 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강조했다.
강 위원장이 언급한 '최후의 수단'은 25일까지 사퇴하지 않은 비례대표 후보들을 당기위원회에 회부해 '출당' 조치를 밟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혁신비대위는 이들을 소속 시도당기위에 회부하거나 당헌ㆍ당규에 따라 중앙당기위나 다른 시도당기위원회에서 처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혁신비대위는 이들에 대한 출당 조치를 늦어도 19대 국회 개원일인 30일 전에 매듭지을 방침이다.
이를 위해 중앙위원회를 열어 당규를 개정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중이다. 추가 조사나 재심을 요청할 경우 심사가 최대 194일까지 소요돼 이달 30일까지 물리적으로 출당 문제를 일단락 짓는 게 쉽지 않다고 보고 심사기간을 최대한 단축할 수 있는 예외 규정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빌미로 구 당권파의 버티기가 더욱 거세질 것이란 관측이 나오고 있어 혁신 비대위와의 내부 갈등은 계속될 전망이다.
통진당은 특히 당원명부가 불러올 메가톤급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당원 명부에는 현재 13만명 수준인 것으로 알려진 당원 명단에 더해 당을 떠난 옛 당원들의 신상명세까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중 핵심은 7만5000여명으로 추정되는 진성당원(당비를 내는 당원) 명부다. 이 중 검찰이 확보한 것은 서버 관리 업체의 DB로, 진성당원 여부가 구별돼 있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원명부에는 당원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소속단체ㆍ직장은 물론이고 당비 납부명세까지 기록돼 있다. 따라서 비례대표 경선 부정 의혹과 통진당의 정치자금 및 불법 당원 논란을 한꺼번에 풀어낼 '판도라의 상자'로 통한다.
통진당은 이 같은 당원명부를 검찰이 손에 넣는다면 진보세력 전체를 탄압하는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할 것이라 보고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당원명부에 담긴 정보 중 현행법상 정당 활동이 금지된 공무원, 교사 등 진성당원의 신분 노출이 이뤄질 경우 이들이 공무원법 위반으로 모두 파면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구 당권파는 과거 회계자료가 검찰에 들어가 이석기 당선자가 운영한 선거홍보회사와의 부당거래 의혹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는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정미 진보당 혁신비대위 대변인은 "당원명부를 (압수수색) 대상으로 삼은 것은 검찰이 모든 당원의 신상정보를 움켜쥠으로써 지속적으로 진보정당의 모든 당원들을 공권력의 정치적 목적 앞에 발가벗겨 놓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김종일 기자 livew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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