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신형민(포항)에게 지난 4년은 ‘롤러코스터’였다. 출발은 순항이었다. 2008년 드래프트 1순위로 포항 유니폼을 입으며 입단 첫 해 당당히 주전 자리를 꿰찼다. ‘디펜딩 챔피언’의 화려한 진용에서 잠재력을 꽃피운 순간이었다. 이듬해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이하 ACL) 정상에 오르며 주가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여기에 국내외 구단의 잇단 러브콜과 생애 첫 국가대표팀 발탁은 달콤한 성공스토리에 힘을 보태는 듯 했다.
공교롭게도 불운은 팀 성적 부진과 함께 찾아왔다. 2010년 신형민은 남아공월드컵 출전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비슷한 시기 포항은 2승6무7패로 리그 13위까지 추락했다. 결국 ‘무관의 제왕’으로 시즌을 마감한 그는 절치부심 도약을 준비했다. 지난해 황선홍 감독 부임 이후 탄탄해진 입지를 바탕으로 팀의 플레이오프 진출을 견인했다. 운명처럼 부침을 함께해온 포항은 어느덧 신형민에게 안식처이자 굴레와도 같아졌다. 처음 주장완장을 차고 임하는 다섯 번째 시즌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 기억될까. 최근 K리그와 ACL을 병행하며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 신형민을 만나 꿈꾸는 목표에 귀를 기울였다.
◇ 순조로운 출발, 기회는 운처럼 다가왔다
신형민은 2008년 당시 세르지오 파리아스(광저우 부리) 감독이 이끌던 포항에 신인으로 첫 발을 내딛는다. 대학 때까지 중앙수비수로 활약하던 그는 쟁쟁한 포지션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수비형 미드필더로 낙점, 선발라인업에 꾸준히 이름을 올린다. 직전 해 K리그를 제패한 명문 팀에서 새내기가 중용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입단하고 운이 참 좋았어요. 2007년에 포항이 우승하고 성적이 좋다보니 2008년 동계 훈련 때 많은 선수들이 대표팀에 발탁되면서 기회가 왔어요. 자연스레 게임을 많이 나가면서 파리아스 감독님도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파리아스 매직’으로 불리며 성공 가도를 달린 포항은 이후 ACL과 피스컵 등 굵직한 대회를 품에 안으며 전성기를 맞는다. 잇단 상승세는 신형민의 행보에도 청신호를 밝혔다. 꾸준한 팀 성적과 맞물려 2009년 생애 첫 국가대표팀 명단에도 이름을 올린 것.
“포항에서 순조로운 출발이 발단이었어요. 제가 국가대표로 뽑힌 것도 팀 성적이 좋았기 때문이니까요. 그만큼 애착이 클 수밖에 없었죠.”
◇ 태극마크, 설레고도 아쉬운 그 이름
부푼 기대와 달리 태극마크는 신형민의 가슴에 상처로 남았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을 6개월 앞두고 당시 허정무 감독의 부름을 받은 그는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는 꿈에 부풀었다. 그러나 그리스와의 조별리그 1차전을 불과 열흘 앞두고 발표된 최종엔트리 23명의 명단에 신형민의 이름은 없었다. 막판까지 피 말리는 주전경쟁을 뚫고 최종 전지훈련지 오스트리아로 향했지만 가혹한 운명은 그를 외면했다.
“아쉬움이 너무 컸어요. 마지막에 현지까지 가서 탈락한 게 더 마음 아팠죠. 당시에는 저도 그렇고 포항도 상황이 안 좋았어요. 파리아스 감독님이 나가시고 박창현 감독 대행이 팀을 이끌고 있었죠. 귀국해서 바로 전화를 드렸는데 힘들겠지만 시즌 중이니까 게임을 뛰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는 팀에 돌아가도 도움이 안 될 것 같아 양해를 구하고 일주일 정도 집에서 쉬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신형민은 올 초 새롭게 발진한 최강희호 1기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그는 2014년 브라질월드컵이라는 새로운 꿈을 그리고 있다. 물론 경쟁의 변수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속한 미드필드진은 어느 포지션보다 호화 멤버들이 포진해있다. 월드컵 무대를 쉽게 낙관할 수 없는 처지다. 하지만 쓰라린 경험은 오히려 약이 됐다.
“한 번 탈락의 아픔을 겪으니까 더 편한 것 같아요.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이 저보다 뛰어난 게 사실이죠. 대표팀에 입지가 없으니까요. 그만큼 열심히 해야죠. 월드컵은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꿈꾸는 무대예요.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 이루고 싶었던 해외 진출의 꿈
올 시즌 개막을 앞두고 신형민에게 이적제의 한 통이 날아들었다. 광저우 부리(중국) 지휘봉을 잡고 있는 파리아스 감독이 애제자에 러브콜을 보낸 것. 당시 포항은 ACL 본선 티켓을 놓고 촌부리FC(태국)와 플레이오프 일전을 앞두고 있었다. 구단 입장에서도 K리그 개막을 열흘 남겨두고 팀의 중심축을 내주기란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2009년부터 국내외 구단으로부터 끊임없는 이적제의를 받아왔지만 그에게 이번 러브콜은 의미가 남달랐다.
“솔직히 꼭 가고 싶었어요. 모르는 감독님도 아니고...프로데뷔를 이끌어주고 기회를 주신 분이잖아요. 또 하나는 군대 문제였어요. 나이 때문에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는 올해가 마지막이었죠. 상무를 가든 경찰청을 택하든 국내에 소속돼 있어야 하는데 이제 더 이상은 어려울 거 같아요.”
조심스럽게 국내 구단 이적 가능성에 대해 물었다. “돈을 많이 준다면야 포항에 남아야죠.(웃음) 그래도 여러 가지 상황을 돌이켜보면 포항은 저와 궁합이 잘 맞는 거 같아요. 감독님도 항상 저를 중용해 주시니까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 강철 카리스마, 소통하는 ‘캡틴’으로 거듭나겠다
신형민은 입단 다섯 시즌 만에 주장이란 중책을 맡았다. 나이로는 중간급이지만 공수를 조율하는 포지션 특성과 맞물려 팀 내 입지를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그는 후배들에게 어려운 선배로 통한다. 무뚝뚝한 표정과 과묵한 성격 탓에 후배들이 쉽게 다가오지 못한다고 했다. 팀 막내 문창진이 인터뷰에서 가장 무서운 선배로 그를 지목하기도 했다. 그라운드 리더로서 선수단과 코칭스태프의 가교 역할은 그에게 어떤 의미일까.
“주장은 팀을 이끌고 가야하는데 프로에 와서 처음 맡는 직책이다 보니 미흡한 점이 많아요. 선수들과 의사소통도 부족한 거 같고요. 필요성은 분명 느끼고 있어요. 후배들한테 먼저 말을 걸어야 하는데 워낙 조용하고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라 쉽지 않네요.”
스스로의 표현대로 인간미는 부족하지만 그는 선수단의 편의를 위해 할 말은 하는 ‘캡틴’이다. 포항 구단 관계자는 "최근 신형민의 적극적인 요청으로 클럽하우스 내 선수들 TV와 가구를 새것으로 교체했다"라고 귀띔했다.
◇ 한 번은 화려한 비상을 꿈꾼다
프로 통산 501경기 출장기록을 세운 ‘철인’ 김기동은 자신의 뒤를 이을 후배로 주저 없이 신형민을 꼽았다. 철저한 자기관리와 나이답지 않은 성실함이 매력이라고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는 없었지만 묵묵히 선수생활을 거쳐 온 선배의 모습은 신형민에게도 많은 귀감이 됐다.
“(김)기동이 형과는 4년 동안 룸메이트였어요. '나이도 적지 않은데 어떻게 필드플레이어로 뛸 수 있을까.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면서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선수로서 그의 목표는 선배가 남긴 이정표에 한 발을 덧대는 것이다.
“꼭 한 번은 화려하고 싶어요. 그 이후로는 꾸준한 선수? 기동이형이 본인 기록은 깨달라고 했으니까 최종 목표는 502경기 출장이 되겠네요.”
스포츠투데이 김흥순 기자 sport@
스포츠투데이 정재훈 사진기자 roze@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