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파이낸싱 주선 조건에 석유구입 약속으로 해결
[아시아경제 김창익 기자]
대우건설-STX건설 컨소시엄이 최근 베네수엘라 국영석유공사(PDVSA)로부터 88억달러 규모의 석유수출시설 공사를 사실상 수주한 데엔 파이낸싱(자금조달)과 관련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50억달러 석유 사줄테니 88억달러 공사 다오’식의 협상이 주효했다.
1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STX건설 컨소시엄은 최근 PDVSA와 석유 송유관, 저장시설, 수출부두 등 석유 수출을 위한 산업벨트 건설 공사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공사비는 총 88억달러(약 10조원)로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할 경우 국내 건설업체들이 해외에 수주한 공사 중 세 번째 규모로 기록된다.
수주의 관건은 10조원에 달하는 막대한 공사비를 어떻게 조달하느냐였다.
베네수엘라는 중남미 지역의 대표적인 산유국으로 매장량 면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다. 차베스 정부는 최근 정유시설 현대화와 산유량 증가를 통한 경제 부흥을 꾀하고 있다.
문제는 자금이다. 베네수엘라가 이란과 함께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를 받고 있어 대규모 자금조달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따라 공사비는 발주처인 PDVSA가 지급하는 것인데, 대우건설-STX건설 컨소시엄이 자금조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최종 계약을 앞둔 35억달러 규모의 PLC 정유공장 시설 현대화 사업도 현대건설이 중국 정부로부터 9억달러 규모의 자금 조달을 주선 한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중국 정부는 최근 150억달러 규모의 공적자금원조를 통해 자국 건설업체들이 베네수엘라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대우건설 해외영업본부는 지난해 8월 이 수주건을 놓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했다. 대주주인 산업은행이 해외에서 대규모 파이낸싱 주선 능력을 갖고 있지만 88억달러는 쉽지 않은 규모였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워낙 대규모 자금이라 해법을 찾기 쉽지 않을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해답은 컨소시엄 파트너인 STX건설쪽에서 나왔다. STX그룹의 해운계열인 STX팬오션이 선박연료용 석유 구입선을 베네수엘라로 바꾸는 방법으로 파이낸싱을 해결하자는 아이디어였다.
STX팬오션이 연간 15억달러의 연료를 수입하는데, 연간 10억달러씩 5년간 총 50억달러의 석유를 베네수엘라에서 사주기로 약속한 것이다.
STX 입장에선 어차피 사야할 석유의 구입선만 바꿈으로써 대규모 수주가 가능했던 것이고, 베네수엘라 정부 입장에선 정유시설 현대화 사업자금과 향후 석유 상품 판매처를 확보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해법인 셈이다.
대우건설-STX건설 컨소시엄은 올초부터 PDVSA와 '석유구입-공사수주'란 빅딜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한 끝에 결국 MOU체결이란 성과를 거두었다.
이에 따라 대우건설-STX컨소시엄이 실제 주선할 건설자금 조달 규모는 38억달러로 줄었다. 컨소시엄 관계자는 “수출입은행과 수출보험공사, 산업은행 등과 자금조달에 대한 논의를 진행할 것”이라며 “석유구입이란 빅딜이 역사적인 규모의 해외건설수주를 가능케 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익 기자 wind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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