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분당서 12년째 ‘돈파스타’운영하는 전종규·이정임 부부
사람에겐 저마다의 로망이 있다. 현재 직장인이거나 은퇴를 눈앞에 둔 중견기업의 임원이라면 은퇴 후의 삶에 대한 로망 한가지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분당구 서현동에서 파스타 가게를 운영하는 전종규(59)·이정임(57) 부부의 삶은 은퇴 후 로망을 꿈꾸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로망으로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추억과 맛의 향기가 가득한 식당을 운영하고 1년에 한 번씩 부부가 함께 여행을 떠나는 삶. 어떠한가. 말만 들어도 끌리지 않는가. 파스타로 시작된 그들만의 특별한 인생2막을 소개한다.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거리의 나무들이 본격적인 봄 햇살을 맞으며 연초록빛의 어린잎을 뾰족뾰족하게 내밀기 시작했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나는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전종규 부부가 운영하는 파스타 전문점 ‘돈파스타’ 안에 앉아서 바라본 4월 중순의 분당 서현역 주변 풍경이다. 화창한 햇살처럼 밝은 표정의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이 오고가는 길목에서 돈 파스타는 12년째 운영되고 있다.
파스타 집 내부는 벽색이 노란빛이 가미된 연한 상아색이 기본을 이루는 가운데 다양한 그림들이 장식돼 있었다. 그곳에 그림을 좋아하는 전종규씨가 해외에서 직접 골라온 그림들이다. 그중에는 파란 바탕의 이탈리아 지도가 그려진 그림도 눈에 띈다. 이탈리반도가 크고 선명하게 표현돼 있어 음식을 먹는 손님들이 ‘아 여기가 이탈리아 파스타집이었지?’ 하고 느낄 수 있게 이탈리아 분위기를 한껏 살리고 있었다.
가게는 24평의 규모이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부엌과 화사하고 아기자기한 인테리어 소품으로 구성된 공간들이 짜임새 있어 보인다. 둥근 아치형 문을 사이에 두고 공간이 분리된 공간엔 천사 그림이며 유럽풍의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다. 화분을 올려둔 선반은 노란색과 초록색 페인트를 섞어 칠했는데 역시 모두 남편 전종규씨가 직접 색을 골라 손수 작업했다. 쿠션 하나 그림 한 점, 화분과 인형장식에서 주인의 정성과 애정이 느껴졌다.
남편 전종규씨와 부인 이정임씨는 가게에서 역할 분담이 분명하다. 남편은 파스타를 만들고 부인은 홀서빙을 맡는다. 함께 파스타점을 운영한지도 십여년이 지났기 때문에 가게 안에서 부부는 어느 때보다 손발이 잘 맞는다.
29세 회사 그만두고 이사업 저사업 전전 16년
가게에 들어가서 인사를 하고 받아든 명함에 ‘시칠리아식 파스타’라고 적혀있기에 어떤 특징을 가진 음식이냐고 물었다. “시칠리아식은 지중해식이라고도 해요. 요즘 웰빙이라고 건강에 좋다고들 해서 많이 찾는데, 파스타도 종류가 많거든요. 시칠리아식은 채소류와 견과류를 많이 사용하고 담백하고 프레시(Fresh)한 것이 특징이죠.”
왜 시칠리아식을 고집하느냐고 물었더니 전씨는 “제가 프레시한 요리를 좋아하고 이탈리아에서 파스타를 공부할 때 저를 가르쳤던 선생님이 남부사람으로 시칠리아식 요리를 했거든요. 또 이탈리아에서 공부할 당시 세든 집주인도 남부인이었고 그곳에서 처음 만들었던 파스타도 나중에 알고 보니 시칠리아식이었어요.”
전씨는 15년 전 파스타를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로 떠났다. 그때 이미 그의 나이 40대 중반이었다. 전씨 부부는 20대 때 지금은 자산관리공사로 알려진 공기업에서 만났다. 부인의 고향이 부산인데 남편이 부산지역에 발령받아 내려갔다가 그곳에서 근무하던 아내 이씨를 만나 결혼에 이른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면서 두 사람은 부업을 함께 했다. 그때 만해도 국내엔 복사기가 귀했는데 그런 정보를 입수한 전씨가 복사기를 수입해 대학가 등에서 복사집을 운영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복사기 집에 화재가 발생하는 사고가 생겼다. 이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은 29세에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회사일과 개인적 사업 둘 중에 어디에 비중을 줘야 할지 고민하다 결국엔 사업을 책임있게 해야겠다는 결론에 이른 것이다. 물론 부인은 결혼하면서 이미 회사를 그만둔 상태였다. 그때부터 부부는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부부가 노후에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고민도 아마 이쯤부터 시작된 것 같다.
부부는 30~40대 초반까지 이것저것 여러가지 사업을 전전했다. 자리를 옮겨 또 복사기 집을 운영했으나 역시 불이 났고 나중엔 화장품과 같은 여성용품을 취급하는 가게도 운영했으나 부부가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아내는 낮에 장사를 했고, 남편은 시장에서 물건을 가져와야 했지만 낮에는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야 할 때가 많았다. 그런 일들은 두 사람의 적성에도 맞지 않았다.
부부는 노년에도 계속해서 할 수 있는 업종을 찾아 나섰다. 한 번은 잘되는 음식점에서 노하우를 제공하겠다는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손이 느리고 여유를 즐기려는 부부의 성향과는 맞지 않아 거절한 적도 있다. 두 사람은 여유로우면서도 노년을 함께 즐길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몇년간 창업박람회장을 전전해야 했다.
40대 중반 파스타 배우러 유학 떠나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한 잡지에서 창업관련 아이템 중에 파스타를 소개하는 기사를 읽게 됐다. ‘뽀모도로’에 관한 기사였다. 당시만 해도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 몇 군데 없어 시장성도 좋은 것 같았고 수입도 꽤 괜찮다고 여겨졌다.
창업박람회장을 찾아다니던 중 일본 도쿄창업여행에서도 이탈리아 식당의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97년경이었는데 당시 일본에서 파스타 가게를 몇 군데 볼 기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현지에서 파스타집이 그런대로 장사가 잘 되는 것처럼 보였고 우리나라에서도 곧 저칼로리의 가벼운 음식이 유행할 것 같은 예감도 들었다.
이처럼 파스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한 친구가 자기 친척이 ‘소렌토’를 운영한다며 소개해 줬다. 소렌토를 직접 찾아가 보니 파스타 식당의 내부가 화사하고 분위기도 있어 보여 더욱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 맛을 좀 더 강화하면 충분히 도전해볼만 하다는 결론을 얻었다.
주변 사람들의 조언도 한몫했다. 당시 운영하던 가게 단골손님이었던 여성화가와 대화를 나누던 중 그 여성이 ‘파스타는 이탈리아 음식 아니냐’고 한 말에 착안해 전씨는 이탈리아 유학을 결심했다. 당초 일본을 다녀올 생각이었다. 영화감독인 이규형씨가 쓴 ‘일본 우동집 여는 방법’이라는 글을 보고서 용기를 내 도쿄에 있는 이탈리아 요리학교로 공부하러 갈 참이었는데 그 화가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게 들렸다.
어학을 3개월만 배운 후 그는 직접 현지에서 몸으로 부딪혀 보기로 했다. 다행히 어학을 공부한 경험과 이탈리아에 가기 전 혹시 몰라 요리학원 6개월을 다녔던 경험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비자를 받았다. 그가 떠난 건 국내에서 IMF가 터지기 바로 일주일 전이었다.
그는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1주일만 늦게 출발했어도 혹은 IMF가 일주일만 일찍 앞당겨졌어도 지금처럼 파스타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요리학교에 등록해 파스타와 약간의 디저트 요리를 배울 수 있었다. 기간은 6개월 정도가 걸렸다. 모든 공부가 끝나고 그는 일주일 정도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곳곳을 누비다 보니 한국에 있는 아내가 생각났다. 당시 아내는 여성용품점을 운영하며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기회가 되면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시 오고 싶었다. 그때만 해도 이탈리아엔 다시 올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부부가 해마다 한 달간 해외에서 파스타 ‘열공’
귀국하고 분당에서 파스타 가게를 오픈했다. 처음엔 7평짜리에 테이블 4개를 놓고 시작했다. 처음엔 성적이 저조했다. 하루에 한 그릇만 팔리는 날도 있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았다. 노후에 아내와 오래오래 해 나가야 할 일이었기에 조급한 마음보단 기다리는 마음으로 파스타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요리를 손님에게 내 놓는 걸 원칙으로 삼았다. 그러기 위해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고 조미료는 일체 넣지 않는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누텔라’ 파스타다. 올리브유에 토마토와 모짜렐라 치즈를 넣고 만든 건강식 요리다.
되도록 이탈리아 현지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 기억을 더듬어 가게를 꾸미고 파스타 맛을 만들어냈다. 유학기간 간간히 메모했던 내용들과 파스타 사진들을 스크랩해두고 보면서 시칠리아 파스타의 맛과 분위기를 살리려고 애썼다. 그렇게 하길 2년여의 시간이 흐르자 가게는 조금씩 자리를 잡았다. 종업원을 따로 쓰지 않고 아내와 함께 일을 하다 보니 생활을 하고 가게 운영하는데 충분할 정도로 돈도 모였다.
그 무렵 그는 다시 이탈리아를 떠올렸다. 자기가 만드는 파스타 맛이 실제 이탈리아의 맛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자기가 만드는 것이 본토의 맛을 그대로 살리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때까지 한참 고생만 했던 아내에게 보상 차원에서 여행을 시켜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큰 맘 먹고 아내와 여행을 떠났다. 이탈리아 현지의 파스타 맛을 보고 자신이 만드는 파스타 맛과 비교도 하고 새로운 요리를 만나면 맛보고 레시피를 연구했다. 전씨 부부는 햇빛이 유난히 화창한 바닷가를 찾아다니며 휴양도 하고 파스타도 공부했다. 종교가 가톨릭인 부부는 여행을 하면서 이탈리아 내 가톨릭 성지도 돌았다. 미술관과 평소 가보고 싶었던 명소들도 들렀다. 일석이조, 삼조, 사조 여행은 그들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했다.
건강 허락되면 하루 2그릇 파스타 만들고픈 소망
그렇게 여행을 시작한 전씨는 그때부터 일 년에 적어도 한 달간은 가게 문을 닫고 아내와 여행을 다니기로 결심했다. 처음엔 가게 문을 한 달 정도 닫는 게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오히려 손님이 종전 보다 더 많아졌다. 그들이 여행을 다녀올 때마다 파스타 맛도 훨씬 향상되고 새로운 메뉴도 선보였기 때문에 손님들은 그것을 매우 신기해 하고 좋아했다.
그들은 이제 매년 9월이면 휴가를 내고 한 달 간 여행을 떠난다. 1번씩 여행을 할 때마다 대략 경비는 500만~600만원(지난해는 물가가 올라 800만원 정도가 소요됐다)이 소요됐지만 남는 게 더 많은 연중행사로 자리잡았다.
그들은 지난 12년간 이탈리아를 비롯해 여행했던 나라에서 찍은 사진과 기록물들을 꼼꼼하게 스크랩해 가게 한 편에 비치해두고 손님들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손님들에게 이탈리아 파스타와 요리에 대한 정보도 제공하고 이탈리아의 이국적인 분위기도 한껏 살리고 있다. 그래서 돈파스타는 단골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족단위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솔로 시절 연애하는 사람과 함께 찾아와 결혼도 하고 이별도 하고 아이도 낳고 그 아이를 데리고 오면서 단골들도 돈파스타와 얽힌 저마다의 스토리가 생겼다.
파스타 가게는 처음 오픈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매출이 약 2배 정도 늘었다. 보는 사람에 따라 ‘그것밖에 안되나’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이들 부부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부부는 함께 하는데 만족한다. 부부는 당초 70세를 목표로 파스타 가게 문을 열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이 허락한다면 하루에 단 두 그릇만 팔더라도 오래오래 파스타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갖고 있다.
이코노믹 리뷰 김은경 기자 keki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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