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에서 임대주택 뽑아야 목표치 달성… ‘소형·임대’ 늘리면 정비사업 심의 수월
[아시아경제 배경환 기자] 박원순 서울시장의 임대주택 8만 셈법이 본격화되고 있다. 동력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이다. 표면적으로는 박 시장이 각종 정비사업에 어깃장을 놓고 있는 모습이다. 개포주공을 비롯해 최근들어 심의 과정에서 줄줄이 퇴짜를 맞고 있는 한강변초고층 단지들이 이를 방증한다.
하지만 박 시장은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임대주택 확보의 근간으로 여기고 있다. 정비사업 심의 과정에서 ‘용적률 완화와 소형주택 확보’라는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섞어 임대주택을 뽑아내야하는 이유에서다. 용적률을 늘려 조합원의 불만을 줄일 수 있고 시 예산을 끌어들일 필요가 없는데다 부채에 허덕이는 SH공사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되는 1석다조인 셈이다.
19일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주거환경정비조례 개정안’에 담긴 재개발 사업에서의 ‘소형주택 건설비율’도 같은 맥락이다. 서울시는 이번 개정을 통해 법적 상한용적률에서 정비계획으로 결정된 용적률을 뺀 나머지 용적률의 50%를 소형주택으로 공급하도록 했다. 이건기 서울시 주택정책실장은 “기존 재개발 정비사업에서 정한 임대주택 비율인 20%에 더해 보다 많은 임대주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예컨대 조례상 250%의 용적률을 적용받는 3종 주거지역이 법적 상한용적률인 300%까지 늘어날 경우 완화된 50%의 절반인 25%는 임대주택이나 장기전세주택으로 지어야한다. 하지만 나머지 25%는 조합이 분양해 이득을 취할 수 있다. 게다가 조합이 지은 임대주택 역시 임대주택법에 따라 표준건축비는 돌려 받게 된다. 결국 주민들에게 조합분양 물량을 쥐어주는 대신 임대주택을 더 많이 짓도록 하겠다는 의도다.
이같은 분위기는 최근 정비사업 심의 과정에서 두드러지고 있다. 이달 초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는 소형주택 확대와 부분임대주택 도입을 받아들인 동대문구 ‘용두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계획 변경 결정안’을 승인했다. 이에 앞서 2월에는 ‘청량리 재정비촉진지구 내 전농구역에 대한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 도시재정비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이곳은 전용 40㎡이상 임대주택을 종전 42가구에서 88가구로 2배 이상 늘리고 시프트 75가구를 추가했다. 지난 18일에도 ‘반포한양아파트’의 재건축 계획안을 승인했다. 60㎡이하 소형임대를 기존 42가구에서 75가구로 늘린 대신 서울시는 용적률을 262%에서 298%로 높여줬다.
이렇다보니 시장 전문가들은 임대주택 8만가구를 공급해야하는 박 시장이 재건축·재개발 등 각종 정비사업을 막고 나설 이유가 없다고 분석한다.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 것은 물론 손안대고 임대주택을 공급해야하는 입장에서는 조합원이 ‘갑’이라는 이야기다.
임대주택 공급 목표치를 전임시장보다 2만가구 더 얹은 상황에서 공급물량이 좀처럼 늘지 않는 것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금자리지구내 분양물량을 줄이는 대신 임대물량을 늘리는 방안이나 장기전세주택의 대안으로 내놓은 전전세 주택 ‘장기안심주택’ 역시 공급량을 받쳐주는데 한계가 있다. 서울시가 잡아놓은 올해 임대주택 계획물량 1만3000가구 중 상반기에 공급하겠다는 1만가구는 4개월이 지나도록 목표치의 절반도 채우지 못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박 시장이 각종 정비사업에 깐깐하게 나서는 것은 재개발·재건축 승인을 받으려면 ‘임대주택 확보가 기본’이라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기 위한 것”이라며 “사업기간이 늦춰질 수는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동시다발적인 주택멸실과 임대주택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평가했다.
배경환 기자 kh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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