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태상준 기자] 1990년 이미연ㆍ김보성 주연의 학원물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로 데뷔 이래 최근까지 이범수(43)의 주요 활동 무대는 줄곧 영화였다. '하면 된다' '태양은 없다' '신장개업' 등에서의 코믹한 '감초' 조연으로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알리는데 성공한 이범수는 2002년 '정글쥬스'로 당당히 충무로의 주연 배우로 올라섰다.
이범수가 TV로 월경(越境)하게 된 것은 2007년 작 '외과의사 봉달희' 때부터다. '버럭범수'라는 별명을 그에게 안긴 '외과의사 봉달희'의 선풍적 인기 이후 이범수는 '온에어' '자이언트' 등 출연하는 드라마마다 '대박'을 쳤다. 올해 3월 종영된 '샐러리맨 초한지' 역시 최고시청률 21,7%를 기록하며 이범수를 TV 드라마의 '불패(不敗)' 만신전에 올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일순간 대중이 이범수를 영화배우가 아닌 TV 탤런트로 여기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철저히 오해다. 이범수는 단 한 번도 영화 현장을 떠나본 적이 없다. 가장 마지막에 출연한 영화 '홍길동의 후예'가 2009년 작으로 3년의 시간 차가 존재하지만, 2010년 한 해 전부를 이범수가 50부작 TV 드라마 '자이언트'에 바친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개봉된 '시체가 돌아왔다'는 이범수에게 있어 의미가 깊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TV에서의 엄청난 성공을 발판 삼은 이범수의 3년만의 영화 복귀작으로, 시체 한 구를 두고 벌어지는 기기묘묘한 쫓고 쫓기기를 그린 범죄 사기극이다. 극 중 이범수는 반듯하고 모범적인 이미지의 천재 연구원인 '현철'로 등장해, 류승범(진오 역)과 김옥빈(동화 역) 등 개성이 넘치는 두 후배 배우들과 근사한 앙상블 연기를 선보인다.
극 중 그가 연기하는 현철은 톡톡 튀는 진오와 동화에 비하면 다소 밋밋한 것이 사실. 이범수는 이런 우려에 대해 '문제 없음'이다. "흥미 위주의 상업 영화에서 진지하고 평범한 캐릭터가 존재감을 발휘하기는 힘들죠. 제가 '시체가 돌아왔다'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에요. 자극적인 캐릭터 사이에서 원톱 주인공으로서 존재감을 어떻게 발휘할 수 있을 지가 제게는 일종의 도전이었어요." 그 도전이 먹혔다. 이범수는 극 중 진지함과 경쾌함을 동시에 가져가며 배우 '이범수'이기에 가능한 존재감을 통해 영화의 중심 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개봉 후 관객들의 호의적인 입소문이 퍼지면서 은은한 롱런을 준비 중이다. '시체가 돌아왔다'는 4일까지 전국 50만 명에 육박하는 관객을 동원하며 인상적인 흥행을 기록 중이다. "흥행이 한 명 들건 두 명 들건 전혀 관계 없습니다. 뚜렷한 목표와 방향성에 새롭고 독특한 이야기 전개 등 '시체가 돌아왔다'는 상업 영화로서 최고점을 찍은 작품이거든요. 십 수 년이 지난 후에도 제 아이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영화입니다. 전혀 부끄럽지 않습니다.(웃음)" 그의 말대로다. 좋은 영화는 결국 관객들도 알아보기 마련이다.
태상준 기자 birdcage@·사진_이준구(ARC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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