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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당연..다시 일어설 힘 얻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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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당연..다시 일어설 힘 얻길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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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경남)=아시아경제 박혜정 기자]인생의 처세를 다룬 채근담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응립여수 호행사병'(鷹立如睡 虎行似病)이라. 매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 호랑이는 병든 듯 걷는다는 말로, 고수는 남들에겐 없는 '무기'를 갖고 있다는 뜻으로 볼 수 있겠다. 지방의 한 외딴 섬에서 사업에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을 모아놓고 이 말을 실현하고 있는 이를 만났다. (재)재기중소기업개발원의 설립자, 전원태(63) 엠에스코프(MS CORP) 회장이다.


지난달 30일, 빗속을 뚫고 경상남도 통영 여객터미널에서 배로 50분을 달려 도착한 죽도. 폐교된 옛 죽도분교를 개조해 만든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하 개발원) 강당 뒤편에도 이 구절이 떡 하니 놓여있었다. 사업을 하다 쓰디쓴 실패를 맛본 중소기업인들의 다친 마음을 치유해주고 다시 일어설 힘을 준다는 개발원의 취지를 한 마디로 압축하는 말인 셈이다.

부산에서 가스제조업체를 운영 중인 전원태 회장은 이날 기자와 만나 "한 번 정도의 실패는 당연한거니 좌절할 필요는 없다"면서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이 여기에 와서 과거는 다 잊고 기술이든, 마음가짐이든 남에겐 없는 무기를 갖추고 나가길 바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 회장과 죽도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9년 제대를 하고 돌아왔더니 아버지께서 하시던 사업이 어려워져 부산에서 알아주던 가세가 형편없이 기울어져 있었단다. 여동생은 학교 대신 병원의 간호보조원으로 일하고 어머니는 혹여 남들 눈에 띌까 3km나 떨어진 시장에서 채소를 팔고 계셨다. 억장이 무너지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때 친구와 함께 바람을 쐬러 온 곳이 죽도였다. 이후 위안을 받고 싶을 때마다 찾다보니 마음의 고향이 됐다고 한다.

그러다 2003년 폐교된 이 터를 인수해 회사 연수원으로 삼았다. 실패한 중소기업인들을 위한 재기교육 장소로 만든 때가 지난해 8월. 개발원 입구엔 '허밀청원'(虛密淸圓)이라는 문패를 달았다. 좌절과 분노라는 묵은 마음은 비우고 맑고 둥근 마음만 가득 채워가는 곳이라는 의미다. 전 회장 스스로 몇 차례 위기를 넘기고 현재 매출액 1300억원의 건실한 회사를 키워냈으니, 그의 경험이 이번 교육의 바탕이 된 것이다.


전 회장은 "그동안 사업에 부침이 있을 때마다 마음이 너무 다쳐 도피 비슷하게 여기를 찾았다. 모든 게 다 인연법이라고, 형편이 나아지면 초라하지만 마음을 다친 사람들을 위한 쉼터를 만들고 싶었다"며 "그저 형편 닿는 대로 순수한 마음에 시작한 일일뿐 대단한 건 아니"라며 재차 손사래를 쳤다.


교육생들은 이곳에서 4주간에 걸쳐 심리치료, 외부와의 단절, 전문가의 1:1 멘토링, 비전 수립 등을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잠재력을 깨우는 수업을 받는다. 특히 둘째주부터는 개발원 뒤 야산에 텐트를 치고 홀로 밤을 새우며 자기성찰의 시간을 갖는다. 교육 내용은 철저히 '치유'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교육비는 없다. 전 회장도 교육 기간이면 일주일에 한번 꼴로 이곳을 찾아 강의도 한다. 그는 교육생들에게 "실패는 과정일 뿐이고 넘어지면 일어서면 된다. 돈만 이룬다고 성공은 아니니 가족과 친구, 부모 등 주변을 살펴야 한다"고 말한다고 한다.


다음날 열린 수료식날, 전 회장은 20명의 2기 교육생들에게 선물로 '상상화'를 나눠줬다. 두 달 동안 붓글씨 연습을 한 끝에 작은 화분엔 '허밀청원'이라고 손수 적어넣었다. 그는 "특별한 꽃은 아니지만 의미가 있다. 6월이 되면 잎사귀가 다 시들지만 9월이 되면 꽃이 활짝 피는 꽃"이라고 전했다. 실패를 딛고 다시 꽃을 피울 교육생들의 인생을 지켜보겠다는 그만의 응원 방식이다.


수료식 후 "잘 되면 꼭 다시 찾아오겠다"는 한 교육생에게 그는, "잘 되면 혼자 하고, 잘 못 되면 찾아와"라는 말을 무심한 듯 던졌다. 그러나 부산사나이답게 툭툭 내뱉는 그의 말에는 상상화의 꽃말 '참사랑'처럼 진심어린 애정과 사랑이 묘하게 묻어났다.


전 회장은 먼 미래에 완성할 큰 그림도 보여줬다. 현재 실패한 중소기업인에게만 개방한 이곳을 보다 많은 이들에게 열어주고 싶다는 바람이었다. 그는 "초라하지만 자연을 벗 삼아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만큼, 나중에는 기업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마음을 다친 사람들이 와서 머리를 비우고 쉴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박혜정 기자 park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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