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브로커 추정..수입차 직원에 "자동차 100대"주문 전화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북한으로 보내야 하니 자동차 100대만 보내주세요.”
수입차 브랜드 K사 직원은 지난해 말 황당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북한으로 자동차를 보내기 위해 구입해야 하니 100대를 보내달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를 건 상대방은 자신을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라고 밝혔다.
K사는 대표적인 수입차 고급브랜드로 자동차 가격대는 8000만원대에서 2억원이 넘는다. 조선족이 요구한 대로 자동차를 보냈다면 시가로 80억원에서 2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K사 직원은 일단 장난전화라고 판단했다. 한꺼번에 100대나 공급할 여력이 없었고 중국에 사는 조선족이 굳이 한국법인에 전화해 자동차를 구입할 이유가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중국 조선족은 “이전에도 했었는데 잘 모르시나 보네”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K사 직원은 이 같은 전화통화 내용을 동료직원과 가십 삼아 이야기하던 중 놀라운 소식을 접했다. 내용인즉슨 전화가 오기 며칠 전 고객게시판에 영문으로 작성한 비슷한 내용의 글이 올라왔고 이에 대해 해당게시판 관리자가 회사로 직접 전화를 해서 상담을 받아보라는 답변을 보냈다는 것이다.
또 다른 동료직원은 “다른 수입차 업체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 것으로 안다”며 “상당수의 중국 조선족이 북한에 고급 세단을 공급하는 브로커로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도 있다”고 말했다.
K사 직원은 동료들의 이야기를 듣고 중국에서 전화를 건 인물에 대해 의심이 들었지만 장난전화로 결론을 내리고 신고 등 별도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전 세계 상당수 국가들은 현재 북한에 사치품을 수출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산하 1718위원회가 발표한 대북 사치품 금수 조치 이행지침에 따른 조치다. 대북 사치품 금수 조치 이행지침은 북한 일반 주민의 구매 능력을 벗어나는 자동차, 전자제품 등을 모두 대북 수출이 금지되는 사치품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같은 조치 때문에 북한은 재일교포와 조선족이 설립한 무역회사를 통해 고급 승용차 등 사치품을 수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적으로 사치품을 수입할 경우 국제적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는 계산에서다.
적발된 사례도 적지 않다. 실제로 지난해 6월 일본 경시청은 도쿄에 거주하는 재일동포 안모씨를 외환법 위반혐의로 체포했다. 안씨가 북한 공작기관의 주문을 받아 한국을 거쳐 북한에 고급 수입차를 공급해온 혐의다. 이는 고급 외제차가 한국을 통해 밀수출된 첫 번째 사례로 남아 있다. 앞서 오스트리아 사업가가 호화 요트 2척을 비롯해 고급 독일 승용차, 고급 그랜드 피아노 등 각종 사치품을 북한에 공급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경찰 관계자는 “전 세계적으로 북한으로 사치품을 공급해 적발된 사례가 적지 않다”며 “판매업체를 속인 후 유령회사를 통해 통관 절차를 거친 수출품으로 위장한다면 최종 행선지가 확인되지 않는 한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임철영 기자 cyl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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