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소연 기자, 오주연 기자]“정육점 칼은 2~3일에 1번씩 갈아줘야 하거든. 그런데 요즘은 6개월 만에 칼 가는 사람도 있어. 어이가 없더라고. 식당이 안 되니까 정육점도 안 되고. 그러니까 내가 죽겠어.”
11일 오후 주말을 맞아 손님들로 북적여야 할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 인적이 끊긴 듯한 고요함 속에 도둑고양이들만 자투리 고기를 찾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30년간 마장동에서 칼을 갈아 온 칼갈이도 넋을 놓았다.
대형 마트에서 9년간 일하다 전통시장으로 들어왔다는 한우나라 직원은 “처음 마장동에 발을 들여놨을 때와 비교하면 시장 분위기가 참혹할 정도로 침체됐다”고 설명했다.
고깃값이 오른 것이 찬물을 끼얹은 요인이다. 한 정육점 주인은 “소값이 떨어졌다 하지만 고깃값은 오히려 더 많이 올랐다”면서 “외래 손님들이 자꾸 들어와야 시장이 활기를 띠는데 요즘은 우르르 몰려왔다 가던 외래 손님들을 보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고깃값이 오른 이유로는 대형 마트의 사재기를 꼽았다. “경매장에 가잖아요? 대형 마트 쪽 사람들이 3~4명씩 나와서 엄청 비싼 값을 불러서 좋은 고기를 다 사가요. 소매하는 사람들이니까 비싸게 사도 남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사면 남는 게 없어. 마트에서는 버리는 거 없이 자투리 고기까지 다 세일해서 팔아치우지만 여긴 그게 안 되니까….”
마장동에서 수십년간 매점을 운영해 온 한 상인은 전통시장 상인들이 매기는 이명박(MB) 정부 4년의 참혹한 성적표를 매일 보고 듣는다.
“대통령 당선됐다고 할 때 마장동에서는 축제까지 벌였지. 여기 보이죠? 천장에 비 막아주는 이것을 지금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에 만들어준 거거든. 우리가 그때 경제 대통령이 됐다고 얼마나 기대를 했어. 그런데 지금은 대통령 이름 꺼내면 맞아 죽어.”
주말을 맞아 손님들로 북적이는 노량진 수산시장은 그나마 상황이 나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 역시 상인들의 불만은 하늘을 찔렀다.
30년간 수산시장에 몸담아 온 한 상인은 “30년 장사 중 지금이 최악”이라고 말했다. “자리 반납하고 나가는 사람이 많아. 지금 주꾸미 철인데 작년에는 1㎏에 1만5000원이었거든. 지금 2만원이 넘어요. 사람들이 안 먹고 만다' 이러면서 가버린다고.”
상인들은 MB정부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수산식품 유통업을 하는 상회의 한 관계자는 “정부가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다면서 정치적 쇼를 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다 대기업에 넘겨준다”며 불만을 토했다.
“IMF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어. 그때까지는 대기업들이 시푸드(seafood) 사업에 손을 안 댔으니까. 경마장이나 여러 공기업, 공공단체에 여기 상회들이 다 납품을 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 대기업들이 시설 지어주고 낚아채 가 버리니까. 정부도 '전통시장 살린다' 말만 하지, 뒤로는 다 대기업에 밀어주고… 암담해.”
같은 시각 가락동 농수산물시장 청과시장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형형색색의 봄 제철과일들로 물들었지만 지갑을 여는 손님은 드물었다. 3명 중 1명은 이리저리 가격을 재며 '비싸다'를 연발하기 일쑤였다. 채소상인 양모(55)씨는 물가가 이 정부 들어 2배 이상 뛰었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하나는 잡겠다고 했었지 않았나. 다 거짓말이다. 물가가 올라가니 손님들 발걸음도 뚝 끊겼고…. 저렴해야 재고 없이 빨리빨리 회전이 되는데 비싸니까 사람들이 안 사려고 하지. 과일은 쟁여두면 썩으니까 마진 얼마 남지 않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팔 수밖에 없어.”
다래·냉이 등 봄나물을 판매하고 있는 채소상인 임모(60)씨도 MB정부의 물가 관리, 민생안정 정책에 낙제점을 매겼다.
“배추 장관, 무 차관 만들어봤자 다 부질없는 짓이야. 물량이 없어서 가격은 오르는데 잡겠다고 해서 지금 잡혔나? 물가는 정치랑 달라. 괜한 말로 표심에 이용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물가 잡는 말, 다 쉰 소리야.”
박소연 기자 muse@
오주연 기자 moon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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